같이 성경의 내용을 공부하는 60대 자매 두 분은 각각 대중교통으로 2번 이상 갈아타고 1시간 30분 이상 걸려 오신다.
동생분이 사시는 동네에서 마을버스를 놓쳐 30분 정도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
이미 지하철 역에 도착하신 언니분께 바깥 추운 데 계시지 말고 먼저 오셔도 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혼자 오는 것이 어색하신가 보다.
지하철 역에서 기다렸다가 동생과 같이 오겠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기다리는 것이 미안해서 부랴부랴 오신 것 같다.
들어오시자마자 공부방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간식을 이쁘게도 준비를 해놓으셨네요.”
“견과류가 몸에 좋다고 하는데, 견과류 자체만 먹으면 맛이 없으니까 초콜렛 발린 것, 소금 묻은 것도 같이 준비했습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요건 뭔가요?”
“요게 소금 묻힌 견과류인데, ‘마카다미아’라는 겁니다. 견과류 중에서는 좀 고급입니다.”
“아, 맞습니까?”
하나 맛보시고는 “맛있네요.”하시며 잘 드셨다.
“목사님, 오늘 보니까 목사님 손이 참 이쁘네요.”
“ㅎㅎ 그런가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남자 손으로는 작고 손가락도 짧아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손이 좀 크고 남자다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쁘다는 소리는 처음 듣습니다.”
“그래요?”
“손이 작아서 어릴 때부터 ‘이 손으로 뭘 하겠나? 펜이나 잡아야 되겠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는데 기분이 별로더라고요. 저도 오기가 있어서 좀 험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군대 가서 대기할 때 사역병을 차출하면 가장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호미 들고 잔디밭에서 쪼그리고 앉아 토끼풀을 뿌리까지 캐내는 건 잘했습니다. 한 번은 흙을 망에 쳐서 고운 흙으로 걸러내는 일을 하게 됐는데, 제가 동기들에게 앉아서 쉬라고 하고 삽질을 자원했습니다. 나름 과감하게 삽질을 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후배인 훈련소 동기가 ‘형, 삽질 안해봤죠? 그러면 다쳐요. 나오세요.’ 그러더니 절 밀치고 삽질을 하는데 방향과 속도가 완전 다른 겁니다. 저는 그것 했다고 저녁에 허리가 아파서 혼났거든요. 그때 전 ‘이런 쪽의 일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하면 오히려 폐가 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펜 잡는 일을 꾸준히 했습니다.”
“목사님은 펜 잡는 게 어울립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뭘 공부합니까?”
“오늘은 성경이 말하는 죽음과 생명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죽음’이란 단어를 들으면 기분이 어떠세요?”
“안좋죠.”
“맞습니다. 요즘은 별로 그렇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서 한 때 ‘죽을 사(死)’자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빌딩에 4층이 없거나 103호 다음에 105호로 건너 뛰기도 했습니다. 기억나시요?”
“예, 맞아요.”
“그렇다고 죽음이 오지 않나요?”
“아니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입에 담기조차 싫어하지만 죽음은 하루하루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죽음은 잘 알고 대처해야 하는 실체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부담스러워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온통 ‘죽었더라, 죽었더라, 죽었더라’입니다. 하나님을 안믿은 사람은 물론이고 잘 믿은 사람도 다 죽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압도적인 실체이고, 사람은 죽음 앞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죽음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고 첫째 죽음과 둘째 죽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죽음이 두 개라고요?”
“예,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어 타락하게 된 것 아시죠?”
“예, 그건 알죠.”
“그때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 하셨다고 나오거든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죽었습니까?”
“죽었나? 잘 모르겠는데요.”
“그 이후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살았는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죽지 않았고 살았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그들을 찾을 때 그들은 들키지 않으려고 숨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은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첫 번째 죽음은 바로 ‘하나님과의 단절(斷絕)’입니다. 그 단절 때문에 보통 우리가 ‘죽음’이라고 말하는 육신의 죽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처음 죽었다고 ‘초상’이라고 하는군요.”
“예?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네요. 잠깐만요.”
나는 얼른 ‘초상’이란 단어를 검색했다.
“어, 정말 ‘처음 초(初)’자를 쓰네요. 이제까지 몰랐던 일입니다. 제가 오히려 배웠습니다. 한자에는 이미 인간이 장례를 치르는 육신의 죽음이 첫째 죽음이라는 걸 담고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