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꿈에 보는데 하늘에서 ‘나는 여호와다.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네 아비 이삭의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겁니다. 당시 사람들의 신에 대한 견해는 ‘그 지역에 그 신이 있다’는 겁니다. 이집트에는 이집트의 신이 있고, 팔레스틴에는 팔레스틴의 신이 있고, 메소포타미아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신이 따로 있었지요. 마치 터줏대감처럼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 아버지 이삭이 섬기고 있으니까 이삭이 사는 곳에 계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이삭과 야곱이 어디 살고 있었는지 기억하세요?”
“예, 제일 밑에… 여기쯤… 브엘세바네요.”
지도에서 가나안 아래쪽을 가리키더니 브엘세바를 찾아냈다.
지도에서 세겜에서부터 벧엘과 헤브론과 브엘세바를 잇는 선을 자주 언급했더니 이제 지명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일단 그 선부터 오르내리며 찾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 척하면 척이네요. 선생으로 무척 기쁩니다. 옛날 의식으로는 하나님은 브엘세바의 신인 겁니다. 그런데 야곱이 멀리 브엘세바를 떠나왔는데 거기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니까 이건 야곱에게 새로운 사실로 다가온 거죠. 게다가 하나님이 ‘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지금 야곱은 형에게 쫓겨 혈혈단신으로 도망을 가는 형편인데 꿈에서라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가슴이 설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한 마디를 더 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서부터 신약성경까지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요, 야곱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구약에 예수님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까?”
“지금 여기에서는 ‘예수’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나중에 신약성경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도 ‘너를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야곱에게도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나 한 집안이나 한 민족에게만 복을 주기 위해 아브라함이나 야곱을 택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는 건 아래로 내려갈수록 하나씩 제외하고 더 좁은 대상으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이나 이삭의 장남 에서가 저주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것처럼 보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나중에 이스마엘이나 에서의 후손에 대해 나오는데 야곱 집안보다 훨씬 크고 강성한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으로 오셔서 모든 민족을 구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거네요.”
“맞습니다. 하나님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거죠.”
“하나님이 15절에서 야곱 개인에게 아주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가 어디 있든지 너를 지키겠다. 너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야곱이 좋아했겠네요.”
“그렇죠. 목숨의 위협에 노출된 야곱으로서는 엄청난 보장을 얻은거니까요. 그리고 야곱은 꿈에서 깼습니다. 일단 놀랐지요. 하나님이 브엘세바에 계셔야 하는데, 자기가 노숙하는 곳에 계셨으니까요. 그래서 야곱은 자기가 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처럼 세우고 자기가 갖고 있던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히브리어로 ‘벧’은 ‘집’이란 뜻이고, ‘엘’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의미입니다.”
“벧엘이란 이름은 본 것 같아요. 피아노학원도 있고, 어린이집도 있고.”
“예, 바로 여기에서 따온 것입니다. 피아노학원이나 어린이집 원장님이 기독교인인가 봅니다.”
“야곱은 용의주도한 사람이라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 일종의 거래를 제안합니다. 자기를 정말 안전하게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면 첫째는 자기가 기둥으로 세운 돌이 정말 하나님의 집처럼 뭔가 세워드리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십일조를 내겠다는 겁니다. 야곱의 말이 엄청 믿음이 좋은 서약처럼 보이지만 실은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꿈에서 뭐라고 하셨지요?”
“돌아오게 해주겠다고요.”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겁니다. 그런데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면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할 것처럼 말한 겁니다.”
“아… 그런 생각은 못해봤네요. 우리는 야곱이 말하면 모두 믿음으로 한 것인 줄 알았는데요. 그래서 야곱처럼 서원을 하기도 하고요.”
“서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귀한 믿음과 헌신의 고백이 될 수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소원을 이루고 싶어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 진짜 속내가 아닐까요? 야곱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