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이레, 의인 & 책장

오늘은 낮은울타리 쓰레기 분리수거일이다.
아침에 배출장소로 나가니 웬 이쁜 책장이 누워 있었다.
만져보니 너무 멀쩡했다.
경비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젊은 새댁이 버린 거니까 원하면 가져 가라고 했다.
안그래도 책장을 하나 사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완전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의 은혜를 체험했다.

그런데 너무 무거웠다.
좋은 원목책장이라 그러려니 해도 200x80x30cm사이즈는 불감당이었다.
책장에 붙어 낑낑대는 내 모습이 마치 나무에 붙은 매미같았을 것이다.
세워서 통로까지, 눞혀서 계단을 올라 겨우 엘리베이터 앞까지 왔는데 힘이 다 빠져버렸고 몸은 땀에 젖었다.

그때 의인이 나타났다.
자기가 뒤에서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둘이서 겨우 세워 엘리베이터를 탔다.
의인은 9층, 나는 11층을 눌렀다.
‘혼자 이걸 어떻게 내릴까?’ 고민하는데 엘리베이터가 11층에 도착했다.
의인이 조용히 9층 버튼을 다시 눌러 11층까지 동행한 것이다.
진짜 감동!!!
의인은 책장을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같이 꺼내주고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낮은울타리 현관문을 열고 책장을 옮기자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책장이 문보다 높기 때문에 눕혀서 현관문을 통과한 후 일단 내려놨다.
옮기는 게 급선무라 어디 놓을지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고민하다가 공부방에 놓기로 했다.
책장을 공부방으로 꺾어 들어와서 다시 세워 벽에 붙였다.
옮기는 동안 너무 힘들어서 ‘의인에게 여기까지 도와 달라고 할 걸 그랬나?’하며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책장을 세워놓고 보니 마치 처음 책상과 의자를 살 때 책장까지 세트로 맞춰 산 것처럼 잘 어울린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뿌듯하다.
다시 보니 자그마치 ‘리바트’씩이나.
난 지금 기분 좋게 책장 정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