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성경공부 하셨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저는 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이라 채플도 하고 성경공부도 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언니분은 전에 성경공부 하는 곳에도 다니셨다고 했는데…”
“예, 다니기는 했는데 별로 기억나는 건 없어요. 그런데 거기서는 성경을 골고루 공부하는 게 아니고 뭐더라… 성경 중에서 제일 뒤쪽에 있는 것만 했는데…”
“계시록요?”
“예, 계시록 비슷했는데…”
“요한계시록요?”
“맞아요, 요한계시록이네요.”
“그럼 오늘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인데 이렇게도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놓고는 서로 이단이라 하고. 저는 그게 싫어요.”
“시대도 다르고 민족도 다르고 사람이 각각 다르니까 삶의 세세한 부분은 다를 수 있지만 성경의 큰 흐름은 다르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잠깐만 있어 보세요.”
나는 얼른 책장으로 가서 요한계시록 주석과 해설서 등을 10권 가까이 가져왔다.
“이 책들을 보십시오. 모두 요한계시록을 해석한 책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을 설명하고 해석해 온 역사가 있습니다. 그걸 이 책의 저자들이 연구해서 쓴 것입니다. 한국 사람 책도 있고 외국 사람 책도 있습니다. 그런데 해석이 아주 상이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 대한 바른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단은 역사적으로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에게 ‘당신들처럼 해석하는 사람이 지난 2천 년 기독교 역사 중에 누가 있었고, 현재 외국에는 어떤 신학자가 있는지 말해 보시오.’라고 하면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2천 년 기독교 역사 동안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해석이 갑자기 한국에서만 옳다고 나타난다면 그것이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걸 보고 이단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군요.”
“일단 ‘계시록’하면 느낌이 어떠세요?”
“뭔가 좀 부담스러운 것 같아요.”
“그동안 계시록은 마치 비밀스러운 책처럼, 읽으면 위험한 책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실은 ‘계시’라는 말 자체가 ‘보여지다, 드러나다’라는 뜻입니다. 감추는 게 아니라 보이게 하고 드러내는 책이라는 거죠.”
“아… 그런가요?”
“요한계시록 1장 1절부터 3절까지를 보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절에 ‘보이시려고’, ‘알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감추고 못보게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보고 알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뭔가를 보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2절에 보면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했다’고 했습니다. 가리지 않았다는 거죠. 그리고 3절에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계시록은 감춰진 은밀한 책이 아니라 드러난 책입니다.”
“보니까 그러네요. 진짜 그렇게 되어 있네요.”
“제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무렵 기독교를 마음대로 믿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요. 그때는 힘들었지요.”
“맞습니다. 당시는 로마시대였는데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너무 심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세상 권세에 굴복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도록 격려하고 소망을 주는 책이 요한계시록이었습니다. 단순히 세상의 종말에 일어날 비밀을 기록한 암호같은 책이 아니란 말이지요. 그런데 ‘로마’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세상의 세력을 훨씬 전에 망한 제국인 ‘바벨론’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니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겁니다.”
“목사님, 질문이 있는데요. 저기 보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라고 하는데 ‘아시아’가 어디입니까?”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기독교인 중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나는 또 책장으로 가서 성경지도책을 가져왔다.
“성경이 있는 아시아는 지금의 아시아 대륙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는 지금의 튀르키예 지역을 ‘아시아’라고 불렀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일본 교회, 한국 교회, 중국 교회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아래 11절에 보면 튀르키예 서부 지역에 있는 일곱 지명이 나옵니다. 자, 여길 보십시오.”
성경지도책을 보이며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를 보여줬다.
“제가 2019년에 이 일곱 교회 유적지를 다 돌아보고 왔습니다.”
“다 실제로 있나요?”
“물론이죠. 지금은 다 무너진 고대 유적지만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성경공부 하는 곳에서 들어봤던 이름입니다.”
“거기에선 우리나라의 어떤 곳에 이런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일곱 교회가 전부 한국에만 있으면 어떡합니까? 미국 사람도 구원 받아야 하고, 유럽 사람도 구원 받아야 하는데요.”
“좀 이상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