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열매

부산에 내려온지 2년 반이 지났다.
내가 알았던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다가가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길이 열리지 않았다.
열릴듯 열릴듯 하다가 닫힐 때는 심한 좌절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비신자들을 만나고 있다.
매주 만나는 그룹도 있고,
격주로 만나는 그룹도 있고,
매월 만나는 사람도 있고,
격월로 만나는 사람도 있다.
몇 달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내가 전에 알지 못했던 사람이고,
소수는 알았더라도 정말 의외로 다시 연결된 사람들이다.
그러니 나의 열심 때문이라고는 전혀 말할 수 없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동안 세례를 준 사람이 있냐고.
한 명도 없다.
그러면 실망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그들은 주로 교회당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세례를 준다.
거의 1년, 길어도 2년이면 세례를 주게 된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거나,
이제 조금 마음을 열어 조심스럽게 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아직은 교회당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매주 혹은 격주 또는 다른 정해진 시간으로 꾸준히 만난다.
나는 그들이 나를 꾸준히 찾아오는 것이 신기하다.
정말 하나님의 일하심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기독교와 교회나 성도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도 듣는다.
기독교와 성경에 대한 오해가 있기도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 불편한 심정을 인정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목사지만 먼저 그들의 불편한 정서를 인정한다.
그리고 오해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한다.

시간을 보내며 신뢰가 생긴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과 성경과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다양하게 질문한다.
내가 성심껏 답하면 이해하려는 태도로 듣는다.

그들은 수십 년간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굳혀 왔다.
순식간에 그들이 변화되면 좋겠지만,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솔직히 언제 어떤 질문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성령님이 내 생각과 내 입술을 주장해 주시기를 늘 기도한다.

기존의 성도는 비신자의 극적인 변화를 기대한다.
그래야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수십 년간 인생 속에서 이런저런 일과 소식으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켜켜이 쌓였다면, 부정적인 인식을 벗겨내고 인식을 바꾸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 당연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재촉하기보다 그들을 기다려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현장에 있는 나로서는 처음 목사와 비신자로서 어색한 만남을 했던 그들이 지금은 나와 주기적으로 만나 웃으며 다과를 같이하는 사이가 된 것이 기적처럼 여겨진다.
간혹 “목사님이 기도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을 받기도 한다.
내겐 하나님이 이미 그들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는 증거로 보인다.
처음 그들이 어떠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직 열매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