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20) 32:1-23

“지난 시간에 야곱이 외삼촌 몰래 식구들과 재산을 데리고 빠져나왔다가 봉변을 당할 뻔했던 것 기억하세요?”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넘어갔잖아요.”
비신자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오면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는 감동할 수밖에 없다.
“고향땅에 가까이 온 야곱에게 더 큰 문제가 있다고 했는데 그게 뭘까요?”
“가정 문제요?”
“가정에는 늘 문제가 있긴 하지요. 야곱이 고향땅을 떠난 이유가 무엇이었지요?”
“형 때문에요.”
“맞습니다. 형인 에서와 무슨 문제가 있었지요?”
“형이 죽이려고 했어요.”
“맞습니다. 쌍둥이지만 형인 에서가 장남으로서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고 장자의 권한을 행사하고 싶어했는데, 야곱이 중간에 속임수로 그것을 가로챘다고 생각하고 동생을 죽여서라도 자신의 권한을 찾아오려고 했습니다.”
“장자의 권한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당시에는 그랬죠. 아버지에 이어서 족장이 되고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으니까요. 옛날에는 형제라도 족장을 신하처럼 섬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원래 장자의 권한이 형인 에서에게 있었나요?”
“하나님이 야곱을 택했다면서요?”
“빙고!! 이런 걸 기억하시다니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쌍둥이인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둘째인 야곱을 족장을 이어받을 자로 이미 택하셨다고 부모에게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부모나 형제가 모두 그 사실을 잊고 그런 비극을 저지를 뻔했습니다. 아비인 이삭이 그나마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라도 정신을 차려서 야곱에게 정식으로 다시 축복을 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에서는 마음이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에서와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형제간의 문제… 쉽지 않겠는데요.”

“여기서 지도를 잠깐 보겠습니다. 야곱은 요단강 동편 ‘마하나임’이란 곳에 있었고, 에서는 사해 남동쪽 ‘세일’이란 곳에 있었습니다. 거리로는 상당히 떨어진 곳입니다. 야곱은 그 먼 곳까지 자기가 부리는 사람을 보내서 ‘야곱이 돌아왔습니다. 인사드립니다.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야곱이 몰래 돌아왔다는 걸 에서가 소문으로 들으면 어떨까요?”
“더 화가 날 것 같은데요.”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나름 신경을 쓴 겁니다. 그런데 보낸 사람들이 돌아와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알렸습니다. 에서가 4백 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겁니다. 4백 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건 뭘 말하는 걸까요? 환영한다는 걸까요?”
“환영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당연하죠. 야곱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일단 재산을 양분했습니다. 에서가 한쪽을 공격하면 다른 한쪽이라도 건지려고 한 겁니다.”
“아이디어가 좋은데요.”
“그리고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뭐라고 했겠습니까?”
“살려달라고 했겠네요.”
“맞습니다. 그런데 그냥 살려달라고 한 게 아니고 예전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해주겠다고 약속한 걸 끄집어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는데 에서가 군대를 끌고오면 어쩌라는 겁니까? 나와 내 가족을 죽일까봐 겁납니다. 약속대로 지켜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게 정말 좋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걸 지키시는 분이거든요. 야곱이 딱 그 포인트를 잡은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 겁니까?”
“하나님이 기도를 듣고 ‘야곱아, 안심하라’라고 해주셨을까요?”
“아니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하나님이 지켜주셨을 것 같은데 그렇게 쉽게 바로 해주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성경을 읽어오셨어요?”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아세요.”
“하나님은 바로 잘 안주시더라고요. 나중에는 결국 주시지만. 야곱이 안죽는 것 맞지요?”
“예.”
“그것 보세요. 내 이럴 줄 알았어요. 하나님이 사람하고 밀당을 하시더라고요.”
“왜 하나님이 밀당을 하실까요?”
“통과해야 할 시험이 있는가 보죠.”
“맞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놀리고 속을 바짝 태우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새롭게 하시려고, 예를 들면 순금을 얻어내기 위해 불순물을 없애버리려고 토치의 센 불로 금을 녹이는 것과 같은 겁니다. 기도를 한 야곱은 한 가지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습니다. 저도 기도를 하면 평소 하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자기의 소원을 들어달라고만 하는 일방적인 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가만히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자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요?”
“예. 혼자 ‘하나님, 이것 왜 이래요? 저것 해주세요.’하고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하고 벌떡 일어나 가버리면 하나님이 좀 황당해 하시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고 기도하고선 하나님이 대답할 여유도 주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안되죠.”
“아… 기독교의 기도에는 그런 면이 있군요.”
“야곱이 처음엔 자기 재산을 양분했잖아요? 그런데 그중에서 에서에게 바칠 예물로 소와 염소, 낙타 중에서 수백 마리를 밤새 골라 준비합니다. 그리고 원래는 재산을 양쪽으로 나누고 한쪽을 공격하면 그쪽을 포기하고 나머지 한쪽을 건지려고 했는데, 그 작전을 포기합니다. 양분하긴 하지만 일렬로 서게 했습니다. 가장 앞에는 예물, 뒤에는 양분한 재산들이 차례로 에서와 군대가 올라오는 남쪽 방향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먼저 에서를 만날 사람들에게 에서에게 먼저 예물을 주고, 말을 잘해서 감정을 풀게 하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내들과 자녀들도 모두 얍복강이라는 작은 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향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건너가지 않았습니다. 밤에 혼자만 강 이편에 남은 겁니다.”
“왜요? 가족들은 건너 갔잖아요?”
“예, 아마 에서가 예물을 받고서도 혹시 풀리지 않은 마음이 야곱의 처자들을 보면서라도 풀리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가족들을 희생시킨 건가요? 너무했네요. 성경에 나오는 사람이 왜 이래요? 실망이네요.”
“성경에 나온다고 위인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거나 어쩌면 더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도 하나님이 택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그런 사람과 함께해 주시고, 그런 사람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가능성이 있는 거지요. 그래야 우리가 안심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믿음을 가지고, 인격도 훌륭하신 분들만 하나님이 택하시면 성경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책이 되고 맙니다.”
“그건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