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은 무슨 생각인지 밤에 가족까지 강을 건너 보냈습니다. 강 이편에는 자기 혼자만 남은거죠. 그런데 성경에 보면 누가 와서 야곱과 씨름을 했다고 했습니다.”
“씨름요? 가족을 보내고 혼자서 무슨 씨름요?”
“우리말 성경에 씨름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그때 샅바를 잡았을 리는 없으니 격투기가 맞을 겁니다. 아니, 한밤중에 심판을 보는 사람도 없으니 실은 그냥 싸움을 한 거죠. 누구랑 싸웠느냐가 중요한데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습니다.”
“천사요? 천사와 싸움을 할 수 있나요?”
“역시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원래 천사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천사와 싸움을 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죠. 그것도 한밤중에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천사가 하룻밤새 이집트에서 모든 집의 첫째로 태어난 사람이나 짐승을 다 죽이기도 하고, 18만 명이 넘는 군대를 몰살시키기도 한다고 나오는데 한 사람하고 밤새 먼지 날리며 씨름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그런데 어떻게 천사와 싸움을 한 거죠?”
“천사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고, 야곱과 몸을 부딪히는 싸움을 해준 겁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누가 이겼을까요?”
“당연히 천사가 이겼겠죠.”
“아니요, 야곱이 이겼습니다. 정말 밤새도록 싸움을 했고, 자기가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때려서 야곱이 다리를 절게 됐습니다. 동틀 무렵 천사가 가야 되니 야곱에게 놓아달라고 했어요.”
“좀 이상하네요. 천사가 사람에게 싸움을 해서 지는 것도 이상하고, 천사가 해 뜨기 전에 가야 되는 것도 이상하고.”
“저도 그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때려 다리를 못쓰도록 만들면서 야곱의 손아귀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게 말이 되지 않죠. 그런데 천사가 왜 그랬을까요? 천사는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을 한 방에 제압하지 말고 업치락뒤치락해주라는 명령을 받고 왔을 겁니다. 그때 야곱은 천사를 알아본 것 같습니다.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은 자기에게 축복을 해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 이 사건을 언급하는 내용이 나오거든요. 거기에 보면 야곱이 울면서 복을 달라고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호세아 12:3하-4상)
“그때 천사가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야곱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천사가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때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처음 나옵니다.”
“원래 이스라엘이 나라 이름이 아니고 사람 이름인가요?”
“원래는 사람 이름입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런데 천사가 야곱에게 놓아달라고 부탁했잖아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도 줬잖아요.”
“져줬겠지요.”
“놀라운데요. 어떻게 아셨어요?”
“뻔하잖아요.”
“맞습니다. 아빠가 아들에게 뭔가 선물을 주려고 준비를 했는데, 그냥 주지 않고 ‘아빠하고 씨름해서 이기면 선물을 줄께.’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아빠가 애쓰는 것처럼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아깝게 지는 것처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들이 기분이 어떨까요?”
“너무 좋겠지요. 아빠도 이기고 선물도 받고.”
“네, 아빠를 이겼으니 이젠 웬만한 동네 형들도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그렇게 해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완전 아빠처럼 하신 거네요.”
“아빠처럼 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은 정말 아빠세요. 그래서 우리가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잖아요.”
“아, 그게 그런 뜻이군요.”
“야곱은 그날 이후로 다리를 절게 됩니다. 하지만 다리를 저는 것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님을 이긴 증거,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져주셨다는 흔적이 되었으니까요. 이제 형 에서를 만나는 것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아니, 인간적으로는 여전히 두려웠겠죠. 하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믿음으로 에서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