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22) 33:1-20

예전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할 때는 공부하는 분들이 휴대폰을 끄거나 묵음으로 하는 건 불문율이다.
‘제자훈련’이란 양육 프로그램을 할 때는 휴대폰이 울리면 벌금을 내기도 했다.
가르치는 목사나 배우는 성도나 휴대폰의 방해 없이 성경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비신자 40대 중후반 여성들과 모임을 할 때 휴대폰 울림은 빠질 수 없는 순서이다.
자녀들이 중학생이거나 초등학생이라서 하교했다거나, 간식을 뭘 먹었다거나, 학원에 간다거나 모두 전화가 온다.
어떤 때에는 그냥 “엄마, 어디야?”라고도 온다.
그러면 “엄마는 OO 아줌마 만나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처음엔 세 번 네 번 걸려오는 통화의 회수이든 내용이든 적응이 안됐다.
이제는 당연히 여기고 아주 여유롭게 “받고 오세요.”라고 한다.

“야곱이 자기 재산과 가족을 일렬로 늘어 놓아 행렬을 만들었던 것 기억하세요?”
“예.”
“왜그랬죠?”
“자기 살려고요.”
“맞습니다. 심지어 아내와 자녀들을 앞장세우고 자신은 맨 마지막에 있었습니다. 가장으로서 비겁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에서가 원하는 대상이 자기인 것을 너무도 확실히 아는 사람으로서 너무도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돌아가라고 해서 왔는데 외삼촌이라는 장벽 겨우 넘었더니 더 큰 장벽이 나를 향해 넘어오고 있는 겁니다.”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요즘 너무 힘드신 가봐요.”
“정말 너무 힘들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고 오후 이 시간에 집에 오면 거의 시체처럼 돼요.”
“그러실 것 같아요. 가게 운영도 해야 하고, 알바도 챙기고, 살림도 하고, 자녀도 챙겨야 하니.”
“남편이 많이 도와줘서 할 수 있어요. 제가 출근을 일찍 하니까 애들 등교도 남편이 챙겨줘요.”
“그래도 엄마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지금 전화 오는 것 보세요. 다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엄마한테 묻잖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도 성경공부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오기 싫을 때가 많지만 일단 오면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의있게 진도 나가야겠네요. 밤새 야곱이 천사와 씨름했던 것 기억하시죠?”
“예.”
“천사를 만나고 새이름을 받은 야곱이 달라졌습니다. 재산과 가족을 앞세웠던 야곱이 가족들 앞으로 나선 겁니다. 형 에서가 정말 4백 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왔는데 그 앞에 나가서 엎드려 절을 하며 형을 맞은 겁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형 에서가 야곱을 끌어안고 우는 겁니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아 감사하긴 한데 이럴 때 하나님께 조금 서운할 수 있습니다. 에서가 이런 분위기라면 하나님이 속이 타서 밤을 새고 있는 야곱에게 미리 ‘안심해라. 에서가 널 죽이지는 않을거다.’ 정도로 힌트를 주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외삼촌이 추격해 왔을 때도 그렇고 형을 만날 때도 그렇고 전혀 힌트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이게 사람이 적응해야 하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만 믿으라는 거죠.”
“하나님을 믿으라는 건 알겠는데 너무 불안하지 않은가요?”
“사실 저도 아직까지 적응이 안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어떻게 살지?’라며 당장 한숨부터 나오죠. 그렇게 넘어간 게 한두 번이 아닌데도, 아직도 그런 일을 당하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목사님도 그런데 저희같은 사람들은 너무 어려워요.”

“야곱의 가족들이 모두 에서에게 인사를 합니다. 갑자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된 겁니다. 야곱의 자녀들은 큰아버지를 만난 거니까요. 에서가 앞에서 만난 가축 떼는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야곱이 선물이라고 하니까 에서가 자기도 많다면서 사양합니다. 야곱이 끝까지 강권하니까 에서가 못이기는 척하며 받습니다.”
“여기도 일단 사양하는 문화가 있는 건가요?”
“체면 문화니까 조금 그런 것도 있을 겁니다.”
“사양한다고 돌려받았으면 큰일날 뻔했네요.”
“그럴지도 모르죠. 기분이 좋아진 형 에서가 야곱에게 호위 겸 동행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사양합니다. 형은 군대이고 자기는 가축 떼라서 군대처럼 이동하면 힘들어서 죽을 것이라며 형에게 먼저 가라고 합니다. 나중에 형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겠다고 합니다. 에서는 그러면 호위병 몇 사람이라도 남기겠다고 하니 야곱이 그것마저도 사양합니다. 형 에서가 반가이 맞아주긴 했지만 야곱 입장에선 아직 형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형은 군대와 함께 자기 지역으로 돌아갑니다. 야곱의 큰 숙제가 풀린 겁니다. 전날밤 천사가 야곱과 격투기를 벌이며 야곱에게 새이름을 준 이유가 있었습니다. 문제가 풀렸으니 ‘할렐루야’하며 끝날까요?”
“아닌 것 같은데요.”
“이젠 성경의 흐름을 꿰뚫으시는 것 같습니다.”
“한 번도 그냥 끝난 적이 없으니까요.”
“맞습니다. 인생이 그렇지요. 야곱이 가나안에 왔으면 원래 어디로 가야합니까?”
“원래 자기 집으로 가야겠지요.”
“그렇죠. 자그마치 20년 만에 무사히 돌아왔으면 연로하신 부모님을 뵈러 가야죠. 그런데 야곱이 집으로 가지 않고 그곳에서 땅을 샀습니다. 부동산을 구입한 겁니다.”
“왜요?”
“모르죠. 가장 큰 문제를 넘기고 나니까 다른 생각이 들었나 보죠. 그런데 거기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제물을 바치고 예배했습니다. 제단의 이름도 붙였습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자기에게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주셨으니까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예배한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셨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아닌 것 같은데요.”
“왜요?”
“원래 자기 집으로 가야한다면서요?”
“맞습니다. 원래 가야할 길이 있는데 목적지에 가지도 않으면서 문제 하나 해결되었다고 목적을 잃고 목적지에 도달한 것처럼 하는 것은 아무리 예배를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건 순종이지 자기가 흥겨워서 하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예배를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군요.”
“그럼요. 예배가 맹목적으로 되어선 안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