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25) 35:2-5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자기가 한 약속과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순수하게 하나님만 믿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이 자기 친정을 떠날 때 아버지 라반에게서 우상을 갖고 떠난 것 기억하시죠? 라반은 그걸 핑계로 쫓아온 것이고요.”
“예,”
“그 지역의 풍습을 따라, 또는 복을 바라는 차원에서 습관적으로 섬기던 신이 있었습니다. 신을 섬기면 단순히 ‘나는 무슨 신을 섬긴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필요한 장비(?)들이 있습니다. 마치 기독교에 성경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죠. 옛날에는 의상이나 장신구가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벧엘로 떠나면서 가족과 식솔들에게 가지고 있던 우상과 우상을 섬기는데 필요한 의복이나 장신구들을 모두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이 잘 따랐을까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평소라면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를 이용해서 세겜 사람들을 학살한 사건과 기존 주민들의 적대감을 생각하면 가족과 식솔 모두 잘못하면 자신들도 똑같이 학살당할 수 있다고 느꼈을 겁니다. 사실 이전까지 두 손 놓고 있던 족장 야곱이 앞장서서 ‘이렇게 하자.’라고 나섰기 때문에 가족이나 식솔들은 모두 야곱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은 자신이 생명의 위협 속에서 혈혈단신으로 도망했던 때에 하나님이 도우셨던 걸 떠올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만 대책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하나님이 예전에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기억하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시다.’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거든요. 성경 이야기 속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려 하고, 나를 똑같이 도우시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기독교도 암기가 중요하네요.”
“ㅎㅎ 어떤 면에서는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뭘 외는 게 있어야 적용을 할 수가 있죠. 야곱은 자기의 경험을 가족과 식솔들에게 알리면서 모두 그 하나님을 믿어야 살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야곱의 말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사람들은 다른 신을 섬기는 것과 관련된 모든 우상과 의상과 장신구들을 다 내놓았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근처 나무 아래에 파묻고, 가족들은 의복을 기존의 신앙과 관계없는 차림으로 갈아입고 떠났습니다.”
“주민들이 공격하면 어쩌려고요? 대책도 없이요?”
“거기가 하나님이 일하실 대목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순종했으니까 사람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죠. 그러니까 야곱과 일가족은 오직 하나님만 믿고 목숨을 건 순종을 한 겁니다. 무모한 순종이었지요.”
“죽지는 않았지요?”
“어떻게 아세요?”
“죽었으면 성경에 안나왔겠지요.”
“ㅎㅎ 이제 성경의 흐름이 어떤지 감도 잡으셨네요. 야곱 일가족이 움직였으니까 주민들이 어떤 대응을 해야 정상인데,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주민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감히 이웃의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거죠.”
“심리적인 것이네요.”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요. 이럴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미리 ‘내가 그들의 마음을 두렵게 해서 너를 추격하지 못하도록 할테니까 안심하고 가기만 해라.’라고 말씀해 주시면 좋은데, 하나님은 이렇게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냥 ‘두려워하지 말고 가라.’라고만 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정말 답답한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 너는 나만 믿어라.’인 거죠. 눈에는 어떤 증거가 보이지 않고 손에는 어떤 증거가 잡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보이는 것처럼 잡은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비신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죠.”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