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26) 35:6-15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벧엘에 도착했습니다. 야곱의 기분이 어떨까요?”
“묘할 것 같네요. 옛날 생각도 나고.”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요?”
“가족은 처음 오는 곳 아닌가요?”
“그렇죠.”
“그럼 아무 생각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야곱에게는 20년 전 인생과 신앙의 깊은 추억의 장소지만 그외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장소일 뿐입니다. 그럼 야곱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설명을 해줘야지요.”
“맞습니다. 야곱이 가족에게 왜 여길 와야했는지, 여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 곳인지 설명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경험한 사람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자신이 경험한 것을 알려주고 설명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목사님이 지금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처럼요?”
“모두가 목사처럼 전문교육을 받고 성경을 잘 설명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각자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부모에게 그런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하고 같이 공부하면서 알게 된 내용을 자녀들에게도 잘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끔씩 애들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정말 잘하시는 겁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건 전에 자기가 도망가면서 노숙할 때 하나님께 약속했던 겁니다. 기억나시요?”
“예.”
“그런데 이 장면에서 성경이 묘한 표현을 합니다. 뭐냐면 이제서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창35:9)’라고 하는 겁니다.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돌아온지 제법 되었거든요. 땅도 사고 그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하나님 시각에서는 돌아온 게 아니었다는 겁니다. 사람에겐 있어야 할 자리가 있고,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지요?”
이런 표현이 기독교인에게는 익숙하지만 비신자에게는 생소하다.
“있어야 할 자리요? 어디…?”
“아…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 같은 거요.”
“아, 예.”
“아담과 하와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지요. 인간사 대부분의 문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네요. 자리가 중요하네요.”
“벧엘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니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이번에도 꿈에 나타나셨는지, 생시에 나타나셨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지만 아무튼 나타나셨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다시 ‘너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전에 천사와 씨름할 때 받았던 이름인데 하나님이 다시 확정해 주신 겁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준 땅을 야곱에게도 주고 많은 후손이 나오고 왕국을 이룰 것이라고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이 좋았겠네요. 저도 복을 받고 싶어요.”
“무슨 복을요?”
“땅도 주시고, 후손들이 잘된다고 하는 복이요.”
“그 복은 저도 받고 싶습니다. 그런데 땅은 잘 안주시네요.”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요?”
“그게 사실인걸요. 그리고 하나님이 야곱에게 땅을 주시고 그 후손에게 복을 주시고 왕국도 세우게 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는가 깨닫게 하고, 결국 예수님을 보내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최고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또 예수님이네요.”
“그럼요. 성경 이야기는 모두 예수님에게로 귀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