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을 해치려던 이웃 주민들이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못하고,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약속 받았으니 이제 야곱의 인생에는 좋은 일만 생기겠지요?”
“아닐 것 같은데요.”
“왜요?”
“이제까지 좋은 일이 있으면 그 다음엔 나쁜 일이 생겼으니까요.”
“맞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것은 인생에 늘 웃는 일만 생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랜만에 이스라엘 지도를 보겠습니다. 벧엘을 한번 찾아 보시겠어요? 족장들이 다녔던 길에 있습니다.”
“여기 있네요.”
오래만에 지도를 꺼냈지만 족장들이 다녔던 길에서 금방 벧엘을 찾았다.
이럴 때 가르치는 자는 참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지도에서 지명 하나 찾았는데도 이렇게 기쁜데, 이분들이 언젠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경험을 말한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울까.
늘 기도하고 상상하는 일이다.
“잘 찾으셨습니다. 그 아래쪽에 예루살렘이 있는데요, 예루살렘 아래 아는 지명이 나올 것입니다. 한번 말씀해 보세요.”
“베들레헴요.”
“맞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왕의 고향이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기도 합니다. 야곱 일행이 세겜을 떠나 벧엘을 거쳐 베들레헴 가까이 왔을 때 한 사건이 생깁니다. 그건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출산을 하다가 사망한 것입니다.”
“아… 맞아요?”
“야곱에게는 11번째 아들이지만 라헬에게는 장남인 요셉이 있었는데, 그 요셉의 동생이자 야곱에게는 12번째이고 막내 아들인 베냐민을 낳다가 사망했습니다.”
“너무 안됐네요.”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으니 너무 슬펐을 것입니다. 야곱은 베들레헴 부근에서 라헬을 장사했습니다. 야곱은 계속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있는 헤브론까지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속상한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안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났네요.”
“예, 베들레헴에서 헤브론으로 가는 길에 에델 망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넓은 들판에 양들을 풀어 놓고 이 망대에서 양들을 보는, 우리 식으로 하면 원두막 같은 곳입니다. 이곳에 얽힌 이야기가 또 하나 있는데요. 캐롤 중에 ‘저 들밖에 한밤중에 양틈에 자던 목자들’ 노래 아세요?”
“알지요.”
“예수님이 아기로 태어날 때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경배하러 왔다는 이야기가 성경에 적혀 있거든요. 바로 그 목자들이 있던 곳이 이 에델 망대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베들레헴에서 너무 멀지 않는 곳이겠네요?”
“천사들이 전해준 소식을 듣고 바로 찾아올 정도니 너무 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에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야곱의 큰 아들 르우벤이 야곱의 첩 빌하와 간통을 한 것입니다.”
“예?”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되지요?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건 완전 19금 이야기네요. 성경에 진짜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네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경을 19금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죄인인 인간의 수준이 어떤지 솔직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믿음의 조상이라는 사람의 집안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겁니다. 믿음의 집안이라고 늘 밝고 좋은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과 사는 모습은 똑같습니다.”
“이건 보통 사람들보다 너무 못한 모습인데요.”
“그렇게 보이지요. 당시에는 이런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이 주신 율법에는 이런 짓을 금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도 성경이니까 기대를 하게 되는데 너무 실망스러운 내용이네요. 야곱이 마상(마음의 상처)을 심하게 입었겠는데요.”
“맞습니다. 야곱은 이 일을 마음에 두고 나중에 죽기 전에 이 일에 대해 아주 심각하게 언급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집안인데도 하나님이 ‘이놈의 집구석은 엉망이네.’라며 버리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이런 집안이니까 하나님의 구원이 정말 필요한 거죠. 집안이 좋다고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 아닙니다. 심지어 몇 대째 믿는 집안이라고 그냥 구원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죄인됨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구원이 임합니다.”
“구원 받기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아요.”
“야곱이 이런 일을 겪으면서 헤브론에 있는 이삭에게 간 겁니다. 딸이 강간을 당하기도 하고, 자기가 돈 주고 산 땅을 떠나기도 하고, 하나님의 약속도 받고, 아내가 죽기도 하고, 아들이 첩과 간통하기도 하고요.”
“야곱이 늙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야곱도 이 때 적은 나이가 아니었거든요. 계산을 해보면 97세가 넘었습니다.”
“예? 그렇게 많이 먹었나요?”
“그때는 사람들이 오래 살았으니까 지금의 97세 분위기는 아니겠지만 적은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헤브론에서 아버지 이삭을 만났습니다.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20여 년전에도 이미 눈이 어두웠으니 이삭은 아주 노쇠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들과 손주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기뻐했을 것입니다. 이런 게 노년의 기쁨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죠.”
“성경에 보면 이삭이 180세에 사망했다고 나옵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에 돌아온 다음에도 20년 정도 지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진짜 오래 살았네요.”
“하지만 노쇠해서 어려운 시기를 오래 보냈을 것입니다. 요즘으로 하면 거동도 잘 하지 못하면서 요양원에서 시간을 오래 보낸 거죠. 인생은 필 때도 있지만 저물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아직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별로 생각하지 않지만 어쩌다가 그런 것 생각하면 기분이 좀 이상해져요.”
“생각하지 않거나 거부한다고 오지 않을 일이 아니지요. 노쇠함과 인생의 종말은 누구에게나 닥쳐올 일입니다. 그래서 노후의 생활을 준비하듯 인생의 종말과 그 이후도 준비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 믿어지지 않는데 어떡하죠?”
“일단 예수님을 믿어보려고 이렇게 시간을 내서 성경공부를 하고 계시잖아요. 이렇게 성경 말씀을 계속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믿어지는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올까요?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되네요.”
“저는 올 줄 믿습니다. 이럴 때 교회에서는 ‘아멘’이라고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