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30) 37:5-11

“혹시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보셨어요?”
“아니요, 들어는 봤어요.”
“엄청 인기있었던 영화인데 아이들이 보지 않았나요?”
“아마 애들은 봤을 거예요.”
“그게 성경에 나오는 ‘모세’이야기거든요. 그런데 ‘이집트 왕자 2’도 나왔어요. 그게 바로 지금 나오는 ‘요셉’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럼 한번 봐야겠네요.”
“성경에 나오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면 아이들이 존경할만한 위인으로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럼 아닌가요?”
“솔직히는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은 흥미로운 사건 위주니까 그렇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은데 성경은 종종 말씀드렸다시피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책이 아니라서 인간적인 약함을 다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눈치가 좀 없어요.”
“눈치가 없다뇨?”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보면 어떻게 했다고 그랬죠?”
“아버지에게 고자질했다고요.”
“맞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 혼자 채색옷을 입은 요셉이 자기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면 형들이 요셉을 좋아하겠습니까?”
“아니요. 왕따시키겠죠.”
“당연하죠. 그런데 요셉이 꿈을 꾸고는 그 꿈을 자기 형들에게 가서 말하는 겁니다. 고자질쟁이가 말하는 것 자체도 듣기 싫을 텐데, 중요한 이야기이거나 꼭 필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꿈 이야기를 들으라고 하니 얼마나 자기 중심적입니까? 게다가 형들이 싫은 티를 팍팍 냈을 텐데도 끝까지 자기 꿈 이야기를 합니다. 평소 자기가 고자질쟁이로 살았으면 형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데 말이죠. 그러니 눈치가 없는 거죠.”
“눈치가 없긴 하네요. ”
“그런데 더 어이 없는 건 꿈의 내용입니다. 형제가 모두 밭에서 곡식 단을 묶는 꿈이었는데 자기 단은 서고 나머지 형제들의 단이 둘러서서 자기 단에게 절을 했다는 겁니다. 이 이야기만 해도 재수가 없는데, 요셉이 다음에 또 꿈을 꾸고 또 형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야곱도 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편애하는 야곱이 들어도 이건 아래위가 무시되는 꿈이라 ‘나도 너에게 절을 한단 말이냐?’라며 요셉을 꾸짖었습니다.”
“그 정도면 좀 모자란 것 아닌가요?”
“그러니 형들은 얼마나 요셉이 미웠겠습니까? 그것도 10대 후반으로 사리분별을 할 줄 알만한 나이였는데도 그러고 다니니 말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집트의 왕자가 된다고요?”
“정확히는 왕자가 아니고 총리입니다. 애니메이션의 원제목은 ‘이집트의 왕자’가 아니라 ‘꿈의 왕(King of Dreams)’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집트 왕자’가 워낙 유명했으니까 시리즈처럼 그렇게 붙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