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지난 시간에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이라고 했던 것 기억나시죠?”
“예.”
“그때 어마어마한 크기의 우주를 만드신 분이라고 했지요. 태양이 은하의 중심을 도는 태양의 공전에 대해서 말하면서요.”
“기억납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 겁니다. 이게 왜 주기도문의 특징이 되냐면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당했거든요.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신성모독죄를 범했다는 거죠. 바로 예수님이 그 호칭을 제자들에게도 기도에 사용하라고 가르치신 겁니다.”
“원래는 그러면 안되는 건가요?”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랍비라는 사람들의 생각이 그랬던 겁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가 내게 부르기를 주는 나의 아버지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구원의 바위시라 하리로다"(시편 89:2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이사야 63:16)
그래서 예수님은 랍비들을 가리켜 ‘너희가 선생이면서 성경을 잘 모른다’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분위기가 안좋았겠네요.”
“결국 그들이 로마 권력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죽였지요. 아무튼 예수님은 기도에 ‘아버지’라는 호칭을 쓰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이건 단순한 호칭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관계의 변화를 말합니다. 우주와 질서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절대자일 뿐아니라 내 아버지가 되신다는 거죠. ‘신’과 ‘아버지’는 정말 다른 느낌이지 않습니까? 신은 내 기도를 들어줄지 말지 정말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그런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