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각자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떠셨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나쁘지 않았다는 건 좋지도 않았다는 의미인가요?”
“아뇨, 좋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20대 초반에 돌아가셨는데, 참 좋은 분이셨어요. 참 반듯한 분이셨고, 저에게 너무 잘해주셨어요.”
“저희 아버지도 제가 어릴 때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막내인 저에게 아주 잘해주셨어요. 그런데 이건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신다고 하니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다고요? 그러면 하나님 안믿을랍니다.’라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 사람은 아버지가 일하거나 돈을 벌지 않고 오히려 엄마가 어렵게 번 돈을 때려서 빼앗고 재산을 탕진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좋지 않은 겁니다. 가정의 속사정은 모르는 거니까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소개하는 것이 좀 조심스러운 부분이 생겼습니다. 세 분은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시니 다행입니다.”
“‘아버지’란 단어는 ‘근원’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좀 사연이 있는 장례식에 가게 됐습니다. 가정을 돌보지 않던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겁니다. 조문객도 거의 없는 빈소를 방문했는데 제 눈에 들어온 장면은 미망인이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데 자녀는 너무 무표정인 겁니다.”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래도 자녀들은 그러면 안되지요. 다른 사람 보는 눈도 있고요. 그래서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아들과 딸에게 권면했습니다. ‘고인에 대해 아는 바지만 그래도 자네들은 슬퍼해야 되네. 왜냐하면 자네들은 고인 덕분에 세상에 존재하게 되지 않았는가.’라고 했습니다.”
“반발하지 않던가요?”
“고맙게도 자녀들이 제 말을 잘 받아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고, 우리 존재의 뿌리와 이유가 되신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또 아버지는 ‘공급자’라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미리 생각하고 챙깁니다. 아이가 입학을 할 나이가 되면 아이가 요구하기 전에 아이에게 가방과 학용품이 필요한 줄 알고 미리 준비합니다. 저희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홈스쿨링을 했지만 그래도 학생이라는 기분을 갖도록 하기 위해 가방을 사줬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가방을 고르고 메는 아이들을 보며 제가 기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이런 존재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시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 염려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들으니까 하나님이 좀 가깝게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