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시절부터 방학이면 짧으면 하루, 길면 사흘을 금식했다.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님의 사랑이 감사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대학 교수였던 선친이 방학 때마다 거의 일주일씩 기도원에 가시거나 집에서 사흘 정도 금식을 하셨던 영향이 크다.
2004년 중요한 진로 결정을 앞두고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아내와 함께 올라와 기도하기도 했다.
얼마전 아내가 아이들과 가나안 수양관에 가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이왕이면 둘째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그리고 셋째와 막내가 신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같이 가면 좋겠다 싶어 오늘 움직였다.
“혹시 없어진 것 아냐?” 너스레를 떨며 네비게이션에 ‘가나안 수양관’이라고 쳤더니 내가 알던 그 길이 아니다.
일단 추억도 더듬을 겸 원래 다녔던 길로 가기로 했다.
중고등학교 때 소풍으로 왔던 동래 식물원 앞까지는 너무 많이 변해서 얼떨떨했다.
원래 막다른 길목처럼 심하게 꺾이는 길 끝에 있던 양로원과 등산객들을 위한 허름한 식당들을 보고서야 반가운 미소가 지어졌다.
아내와 캠퍼스 커플이기에 꼬불꼬불 길을 오르며 부산대학교 예술관 뒤 소위 ‘개구멍’으로 금정산에 놀러갔던 이야기, 중고등학교 때 그 꼬불꼬불한 길을 하염없이 걸었던 이야기, 돌아가는 길이 싫어 지름길로 가겠다며 산속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던 이야기, 그 때 나이 많은 선생님들도 이 길을 같이 올랐는데 하다가 바로 우리가 그 나이가 되었다고 하며 광음같은 세월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다.
백미러로 슬쩍 아이들을 보니 아빠엄마의 추억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제각기 이어폰을 꽂고 다른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금정산성이 보이자 주말 오후라 등산객들도 많이 보였다.
예전에 보신탕을 했던 가게들 사이로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길로 더 진행했다.
드디어 10년 너머만에 가나안 수양관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내리는데, 아이들의 표정은 ‘뭐 이런 후진 곳에 왔지?’라는 것 같았다.
건물 생김새부터 3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별다를 것 없는 분위기였으니까.
가나안 수양관에 왔어도 나는 자체 집회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며칠씩 머물 때에도 거의 숙소만 얻었는데, 숙소가 너무 낙후되고 냄새가 나서 나중에는 아침에 왔다가 밤에 내려가는 출퇴근식으로 기도했다.
주로 금식을 했으니 식당을 이용하지도 않았다.
어떤 때에는 기도원 뒷산 큰 바위가 기둥처럼 세워진 꼭대기까지 올라가 그 바위들 사이에서 목이 쉬도록 울부짖으며 기도했지만, 대부분은 중턱에 있는 절벽 끝 바위에서 기도를 했다.
아이들에게 그곳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온 탓인지 길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오직 ‘뒷산을 올라 갈림길에서 우회전’만 되뇌이며 올랐다.
가파른 길을 오르는 것도 힘든데, 지난 주에 내렸던 비의 영향으로 흙길은 질퍽질퍽해서 아이들에게 조금 미안했다.
길 가장자리 마른 낙엽을 밟으며 잘 올랐다.
‘여기가 아닌가?’하며 걷다 보니 눈에 익숙한 바위들이 보였다.
드디어 거기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공기가 탁해서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그 때 보이던 낙동강과 너머 너른 평야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지 않고 저 강과 저 들판을 보며 기도했던 옛날이 떠올랐다.
아내는 내가, 그리고 우리가 함께 앉았던 그 바위에 먼저 앉았다.
근처 바위에는 어떤 중년 여인이 기도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시선을 두지는 않았지만 기도 소리는 신기하게 들었다.
아빠도 이 자리에서 소리도 지르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기도했고, 성경을 읽기도 했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다같이 손을 잡고 한번 기도하자고 했다.
하나님께서 “내 말과 나의 영이 너와 네 후손과 네 후손의 후손에게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네 자녀들에게 함께해 주시길 기도했다.
그리고 네 자녀들의 이름을 불러 가며 이 아이들이 왜 아빠엄마가 이 산에 올라 기도했는지, 금식하며 기도했는지, 하나님의 사랑이 그토록 감사했는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했는지 마음 깊이 깨닫고 공감하는 날이 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여전히 푸른 소나무와 봄을 맞아 움이 돋는 나무를 보며 하나님이 새로운 세대를 세우시며 신실하게 다음 세대를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게 됐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오길 기대한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 다시 찾아올 기도의 자리를 만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