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저녁식사

추석에 모든 사람이 가족과 명절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근처에 안면만 있는 20대 중반 남녀 두 명이 있다.
두 사람도 안면만 있지 대화는 없는 사이다.
두 사람은 집이 멀고 내일부터 다시 일해야 해서 추석 때 집에 가지 못하고 각자 원룸에서 혼자 지낸다고 들었다.

추석인데 혼자 지내는 건 다른 날보다 더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며 집으로 초청했다.
당일 갑작스런 초대였지만 두 사람 모두 흔쾌히 응했다.
부랴부랴 청소하고 식탁을 꾸미느라 힘들었다.

가스펠리아 커피 드립백 [사진 강신욱]

두 사람은 현관에 들어서며 자신들을 불러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내가 목사이니 밥 먹기 전에 기도를 하자고 했다.
두 사람이 흔쾌히 응했다.
20대는 위대했다.
고기, 찌개, 라면사리, 밥, 커피, 과일, 송편까지 남김없이 다 먹었다.

식사 후 이야기를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데, 한 명은 불교집안에서 혼자만 어릴 때 교회를 다녔다가 교회에 실망하고 떠났고, 한 명은 기독교 집안인데 혼자만 비신자라고 했다.
둘 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대화는 밤 10시까지 이어졌다.
추석날 밤만 깊어진 게 아니었다.
인사만 할뿐 거의 대화가 없던 두 사람과의 대화도 많이 깊어졌다.
원래 밤에 바닷가에서 좋은 카메라로 한가위 달빛을 찍으려 한 밤이었다.
한가위 달빛은 보지 못했지만 두 사람 마음에는 서광이 비췄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