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1)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살면서 죽음을 알게 되고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안다.
죽음의 때를 멀리하려고 건강을 챙기지만 죽음은 거스를 수 없다.
인간에게 죽음은 애써 무시하고픈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영생(eternal life)’을 ‘불사(immortality)’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단순히 ‘죽지 않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지옥에서도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신 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이것은 창조주 신과 피조물 인간의 경계였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물이었다.
마치 결혼 반지처럼.
하나님은 그 명령 끝에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사람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그 증거를 없애버렸다.
그러나 사람은 죽지 않고 계속 살았다.
하나님도 인간의 배반에 너무 놀라 그들을 죽이는 것을 잊으신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하나님이 부르면 도망가서 숨어야 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것을 ‘영적 사망’이라고 하고, 이것을 ‘아담의 범죄’ 곧 ‘원죄(原罪)’라고 한다.
영적 사망은 육신의 사망과 구별된다.
영적 사망이 육신의 사망의 원인이다.
만약 인간이 육신적으로 죽지 않는 몸이 된다고 해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이라는 게 성경의 시각이다.

처음 인간은 결국 육신적으로도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살아서 눈을 마주치고, 체온을 느끼고, 말을 섞으며 같이 지냈던 사람이 갑자기 싸늘하게 굳어지는 것을 처음 경험한 사람의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자, 생명 없는 자는 자신을 스스로 살릴 수 없다.
그래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살려주셔야 한다.
다시 사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편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할 능력도 없다.
이것을 ‘전적타락, 전적무능력, 전적부패’라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 대신 죄의 대가를 치러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렇게 해주신 것을 믿는 사람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곧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영생을 이렇게 정의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여기서 ‘아는’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처럼 ‘이런 내용이 있다더라’ 식으로 아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아는’은 부부 사이의 친밀함을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는 의미이다.

성경에서 ‘영생’은 ‘무한대의 시간동안 죽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영생’은 ‘하나님과 누리는 친밀한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