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한 아들들이 연달아 죽으니 아버지 유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당연히 안좋았겠죠. 혹시 며느리 탓을 했나요? 그건 정말 진상인데요.”
“유다에게 셋째 아들 셀라가 있었는데 아직 어렸던 모양입니다. 며느리 다말에게는 셀라가 아직 어리니 친정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친정으로 보냈다고요? 그럼 안되죠. 그게 어떻게 며느리 탓입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유다 입장에서는 셋째 아들까지 혹시 잃을까봐 셀라가 제법 성장했는데도 다말을 다시 데려오는 일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자기 아들들이 잘못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이 벌을 내리셨다고 했잖아요? 성경에 나오는 사람이니까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왜 그걸 며느리에게 뒤집어 씌웁니까? 너무하네요.”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식 문제로는 평소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도 어쩔 수 없는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유다를 변호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실 저나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란 거지요. 더 중요한 건 하나님이 우리가 그런 연약한 사람인 것을 알고도 사랑하셨고 먼저 다가와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할 때 사랑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남편분과 사랑해서 결혼하신 거죠?”
“예.”
“뭐가 맘에 들어서 사랑하신 건가요?”
“그때는 맘에 드는 것이 있었나 보죠.”
“예? 그때는요? ㅎㅎ 사람은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호감을 갖고 사랑하는 ‘~때문에’ 사랑이지만 하나님은 사랑할 이유가 없는데도 사랑하는 ‘~에도 불구하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예를 들어 범죄자가 하나님을 믿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것 참 궁금한데요. 범죄자도 하나님만 믿으면 천국 갑니까?”
“어떨 것 같으세요?”
“범죄자니까 천국에 가면 안되는 것 아닙니까? 나쁜 짓을 했는데 하나님만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고 하면 그건 불공평하잖아요.”
“천국에는 어떤 사람들이 갈 수 있을까요?”
“착한 사람들요. 아, 아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만 간다고 했지요? 아, 어렵네요.”
“저는 착한 사람일까요?”
“목사님은 착한 사람 아닙니까? 목사님은 착해야 되잖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실은 착하게 보일 뿐이지 저도 나쁜 사람입니다. 나쁜 생각을 하고 나쁜 말을 하는데 속으로 하거나 혼자 있을 때 해서 들키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들킨 죄나 안 들킨 죄나 모두 죄입니다. 어쩌면 저는 들키지 않고 착한 척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더 위선적이고 나쁜 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그래도 목사님이니까 천국에 가겠지요.”
“천국 가고 싶으면 모두 목사하면 되겠네요. 목사라서 천국 가는 것 아닙니다. 제가 더 나쁜 놈이라니까요.”
“그래도 목사님은 예수님 잘 믿으니까 천국에 가겠지요.”
“맞습니다. 저도 목사지만 착하고 남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아서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에 가는 겁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간다면 무엇 때문에 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어서요.”
“그래서 복음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도덕적으로 어떤 경지에 올라야만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고 하니 복음입니다.”
“그래도 나쁜 짓을 하면 안되잖아요?”
“그럼요. 그런데 여기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법이 다르고 심지어 사람마다 나쁜 짓에 대한 기준이 다릅니다. 그러니까 전부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선악을 구분하고 자기 마음에 들면 천국에 보내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옥에 보내고 싶어하지요. 지금도 사람들은 열심히 선악과를 먹고 있습니다.”
“그럼 기독교인은 좀 나쁜 짓을 해도 된다는 건가요? 저는 기독교인이 나쁜 짓을 하고나서 회개하면 된다고 하는 게 싫더라고요.”
“좋은 지적입니다. 기독교는 나쁜 짓을 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된다는 입장이 아닙니다. 당연히 나쁜 짓을 하면 안되죠. 문제는 사람들은 각자 나쁜 짓의 기준이 다른데 하나님은 나쁜 짓에 대한 기준이 너무도 엄격하셔서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이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죄값을 대신 치러주셨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만약 누가 빚을 많이 졌는데 대신 갚아주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감사하며 다시는 빚지지 말고 잘 살아야죠.”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건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져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서 다시 빚지지 말아야 되겠다는 심정으로 사는 겁니다. 그러나 빚지고 싶지 않아도 살다보니 형편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빚을 또 지게 되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러면 어떨까요?”
“속상하겠지요.”
“대신 갚아준 사람에겐 어떤 마음이 들까요?”
“면목 없겠지요.”
“그게 기독교인의 회개입니다. 빚지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빚지고 나서 너무 속상하고 예수님께는 너무 죄송한 마음으로 표현하는 게 회개입니다. ‘나쁜 짓 해도 괜찮아. 회개하면 되지 뭐.’라고 하는 건 뉘우침이 없는 뻔뻔한 자세니까 참된 회개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죄가 그대로 남는 건가요?”
“아마 그렇겠죠. 예수님이 대신 빚을 갚아주셨는데 감사한 마음이 전혀없고 그걸 값싸게 여긴 죄까지 붙을 것 같은데요.”
“회개가 간단한 게 아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