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부부의 질문(2)

친구의 부인이 식사 자리에 따라나온 이유가 있었다.
친구가 나를 가리키며 자기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 궁금한 것 목사님한테 물어봐.”
“궁금한 게 있으세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사실 최근 무서운 생각이 많이 들어서 집에 혼자 있기가 어려워요. 오늘도 그래서 따라온 거예요.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보려고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도 했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어요. 너무 힘드네요.”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일차적으로는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고 다른 식구가 없으니까 아직 새집에 적응되지 않아 그럴 수도 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모든 것이 어색하잖아요. 아직 내 집이라는 느낌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맞아요. 그래서인지 저도 모르게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불쑥 가깝게 지내자고 인사를 했어요.”

“또 나이가 50대 중반이면 모든 것이 안정되고 큰 변화가 생기길 원치 않는 마음이 많게 되죠. 그런데 지금 친구가 이 나이에 기존의 사업을 처분하고 다른 일을 준비하려고 하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요즘 자영업자들이 어렵다고 하니까 잘할 것이라는 확신보다는 더 어려워질 것 같은 두려움이 크죠.”
“사실 그런 부분도 있어요.”
“마음에 어려운 걸 표현하시는 편인가요?”
“아뇨, 젊을 땐 그랬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안하게 되네요.”
“보통은 반대로 나이가 들면서 더 표현하게 되는데 왜 그럴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힘든가봐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부분입니다. 두 분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잘 하려고 최근에 교회 근처로 이사한 것 맞죠?”
“예.”
“그럼 이걸 사탄이 잘하는 일이라며 가만히 둘까요?”
“싫어할 것 같은데요.”
“당연하죠. 사탄은 아주 악랄하고 교활한 놈이라서 이삿짐 정리가 끝나고 새집에 적응할 때가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교회 근처로 이사온 것을 후회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두려움과 어려움을 줄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보통은 사탄이 주는 어려움에 빠져들죠. 그런데 이때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왜 사탄이 이렇게 방해할까요?”
“글쎄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하게 하려고요.”
“그렇죠. 교회당 가까이에서 한 번이라도 더 교회당에 가고, 기도회에 참석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소위 ‘받을 은혜’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과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것은 은혜를 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일이 됩니다. 좋은 것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닥친 두려움과 어려움 자체에 빠지지 말고 은혜를 받을 그릇을 만드는 과정으로 생각하세요.”
“그래야 되겠네요.”

“그리고 또 할 일이 있습니다. 두려움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시죠?”
“예, 그런데 잘 없어지지 않네요.”
“기도만 하지 말고 대신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선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권세를 주셨습니다. 내 마음에 두려움을 주는 마귀를 꾸짖어 내쫓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주는 마귀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이건 속으로만 하지 말고 입으로 정확하게 내뱉어서 내 귀가 듣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연습이 필요합니다. 저도 여러번 연습했습니다.”
“목사님도 연습하시는군요.”
“그럼요, 저도 연약한 사람인데요. 제가 연습한 것처럼 저를 따라 해보시겠어요?”
“두려움을 주는 마귀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두려움을 주는 마귀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잘하셨습니다. 사실 따라하라고 금방 따라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오늘 집에 가셔서 몇 번 더 연습하시면 더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 말을 하고 나니까 두려운 마음이 좀 없어진 것 같아요.”
옆에서 보던 친구도 거들었다.
“당신 얼굴이 달라졌어. 웃는 표정이 되었네.”
정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활짝 웃는 표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