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2 낮은울타리예배

거의 한 달만에 하박국 공부를 이어갔다.
선생도 학생도 모두가 전에 어디까지했는지 가물가물한 정도였지만 강의를 시작하자 방학이 없었던 것처럼 분위기가 잡혔다.
6회차 만에 마지막 3장으로 들어섰다.
하박국의 배경과 캄캄하고 답답하지만 하나님은 전혀 그런 상황과 관계없이 임재와 영광을 드러내 놀랍기만 하다.
전하는 내가 먼저 가슴이 뜨거워졌다.

공부를 마쳤을 때 비신자와 신자의 경계에 있는 한 사람이 예배에 참석했다.
방학을 마치고도 지난 두 번의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
밤새 일하고선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많이 피곤한 얼굴이었다.
또 밤을 샌 모양이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석한 그 마음이 고마웠다.
너무 피곤해서인지 식사는 못하고 일찍 돌아가서 좀 딱했다.

‘성도의 감사와 찬송’ 시간에 의외로 세례 교육을 받고 있는 분이 자원했다.
마음에 큰 짐 중 하나가 풀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세례 교육 중 먼저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 공적으로 공개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낮은울타리가 준거집단이 되었고 마음을 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난 시간에 ‘교회’에 대하여 공부했기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교는 ‘요한복음 14:26,27’을 본문으로 ‘예수님은 평안을 주신댔는데 왜 평안하지 않을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예수님은 평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고,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기대만큼 평안하지 않고, 여전히 근심도 많고 두려움도 많다.
“왜 이럴까?” 아무도 묻지 않고 ‘그러려니’하고 지내며 말씀과의 괴리는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그 부분을 점검했다.

찬송은 많은 기독교인에게 익숙한 찬송가 제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를 불렀다.
4절 가사는 ‘이 땅 위에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이다.
이 가사로 부르면서도 많은 신자들은 ‘엉뚱한(?) 평안’을 소망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점을 지적했다.

예배를 마치고 오랜만에 집밥 분위기로 식사했다.
오랜만에 쌀 씻는 소리가 작은 낮은울타리를 채웠다.
집 반찬을 넉넉하게 해서 가지고 와주시는 분들 덕분에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