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목사님이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집니까?’라고 물었을 때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어져서 ‘예’라고 대답했는데요.”
“예, 지난 시간에 그렇게 대답하셨지요.”
“그런데 집에 있을 때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겁니다. 낮은울타리에 와서 목사님과 있을 때는 믿어지고 저 혼자 있으면 안믿어지는데 어떡하죠? 이건 안믿는거죠?”
“지극히 정상이십니다.”
“예? 제대로 믿지도 못하고 오락가락하는데 이게 정상이라고요?”
“예, 저도 목사지만 오락가락하는 걸요. 목사라고 늘 하나님이 눈앞에 계신 것처럼 지내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신다고 했지만, 사실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별로 감흥도 없고 와닿지도 않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 내 옆에서 날 도와주셔야 하나님의 존재가 쓸모있죠. 그런데 저도 답답한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 건가?’라는 생각은 합니다.”
“목사님도 그런 생각하시는군요.”
“그럼요. 나는 힘든데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이 완전히 없다’까지는 아니고 ‘하나님이 뭐하시느라고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 건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100층 빌딩 꼭대기에 좌정하고 계신다고 하면 사람들이 가서 하나님에 대해 연구를 할 겁니다. 하나님의 키가 어느 정도 되고, 피부색은 어떻고, 수염이 있는지 없는지 볼 겁니다. 말을 시켜서 음성은 소리가 어느 정도 큰지, 인자한 말투인지 퉁명스런 말투인지 들을 겁니다. 이렇게 대상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결론을 낸다면 그건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죠. 거기엔 믿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존재에서부터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고, 하나님에 대해 세세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을 한 사람은 하나님이 어딘가에 계신다고 믿습니다. 전에 오싹할 정도로 무서운 생각이 들었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꾸짖고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하셨지요?”
“예.”
“그때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스럽던가요?”
“아니요,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니까 ‘하나님이 진짜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믿음은 그걸 기억하고 다시 그 마음 상태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신다는 걸 생생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그냥 믿는 것이군요.”
“예, 그래서 믿음은 증명도 못하고 설득도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뭔지 대충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