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제 딸이 초기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목사님 기도를 받고 싶습니다.”
“오늘부터 기도할테니 따님 이름을 가르쳐 주십시오.”
며칠 뒤로 약속을 잡았고, 그날부터 그 딸을 위해 기도했다.
약속한 날 이른 아침에 낮은울타리에 가서 만남을 준비했다.
낮은울타리 커피가 맛있긴 하지만 수술을 앞둔 환자라서 대신 제주도 올티스 녹차를 준비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3분 정도 녹차를 우려냈을 때 모녀가 들어왔다.
“먼저 따뜻한 녹차 한 잔 드십시오.”
많은 말보다 적절한 한 잔의 음료가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정말 맛이 깔끔하고 좋네요.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습니다.”
딸에게 물었다.
“처음 암이라는 소리를 들으셨을 때 어떠셨어요?”
“믿기지 않았습니다.”
딸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제가 잘못 키워서 이런 병을 앓게 된 것 같아 회개했습니다.”
“이런 큰 병을 앓을 만한 죄를 지은 것이 생각나시던가요?”
“아니오.”
“그러면 이 병은 형벌로 온 게 아닌데 왜 회개를 하시나요?”
“그래야 할 것 같아서요.”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이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얻거나 안좋은 일이 생기면 다짜고짜 회개부터 하는데,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 놈 어떻게 하나 두고보자’ 그러고 보시다가 잘못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벌로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겪는 대부분의 일은 세상에 살다보니 그냥 그런 일이 생긴 것일 뿐입니다. 굳이 영적인 의미를 갖다 붙일 필요가 없다는 거죠. 오히려 일찍 병을 발견한 걸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야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모녀의 표정이 달라졌다.
“목사님,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한 맹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된 것은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라고 말이죠. 그때 예수님은 누구의 죄 때문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나 한국 기독교인들이나 안좋은 일이 생기면 도식적으로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살다 보면 병도 걸리는 거죠. 저희 조부모님과 선친이 암으로 돌아가셨으니 아마 저도 암으로 죽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천벌을 받아서 암이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그냥 맘 편하게 수술 받으세요. 다만 암이라는 게 사실 좀 무섭기도 하고 불안해서 기도도 잘 안되기도 합니다. 그때 이 십자가를 붙잡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탄자니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와 지역 주민을 후원하느라 구입했던 손바닥만한 흑단 나무 십자가를 하나 내밀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목사님, 저희 딸 퇴원 잘해서 전화드렸습니다. 목사님이 주신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데 정말 맘이 편해졌다고 합니다. 정말 마음이 무거워서 전화드렸는데 목사님 만나고 마음 가볍게 수술 잘 받고 나왔습니다. 저희가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복음이죠. 이제 복음 속에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