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의외의 만남을 갖게 하셨다.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욱아, 목요일 오전에 시간있냐?”
“그럼”
“OO 선배 기억하지?”
고등학교 선배 겸 같은 대학 다른 과 선배였는데 건물이 가까와 종종 마주쳤다.
그런데 입이 너무 거칠어 몇 번 만나고는 웬만하면 마주치지 않으려했던 선배다.
“그럼”
“그 형수님이 세상을 떠났다. 예전에 교회를 다니긴 했는데 병치레하는 동안 오래 교회를 못간 모양이다. OO 선배가 네가 마지막 가는 길에 축복기도라도 해줬으면 하던데 혹시 네가 발인예배를 해줄 수 있냐?”
잠시 망설였다.
거의 30년 만에 만나면서 발인예배 인도라니.
분명 복잡하고 아픈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나는 목사다.
그러면 그런 곳으로 가야 한다.
그런 만남을 하기 위해 부산에 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 OO 선배가 나를 기억해 줘서 고맙네. 내가 할께. 그런데 발인예배 때만 덜렁 나타나는 건 그렇고, 혹시 시간되면 오늘 같이 가자”
“그래, 빈소에서 보자”
나는 저녁에 선약이 있었다.
2시간 가까운 만남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거의 30년만에 만난 선배를 알아볼 수 있을까 염려했다.
솔직히 얼굴이 가물가물했다.
사람들 속에서 알아보지 못하는 실례를 범할까 걱정이 됐다.
빈소에 들어서는 순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앉아있던 선배는 나를 보고 일어나 다가왔다.
술이 아주 많이 취해 몸을 가누는 것도 발음도 온전치 않았다.
“신욱아, 아니 강 목사님, 너무 고맙다, 미안하다”
친구를 통해 내가 발인예배를 인도해 준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온 친구를 통해 사정을 들었다.
신혼 때부터 선배의 아내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선배는 단란한 가정을 잘 이루고 살았다.
듣자하니 오랜 병으로 집안에서 받은 상처가 많은 것 같았다.
그걸 견디며 여기까지 왔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선배는 상심이 큰 것 같았다.
선배는 계속 내 손을 잡았다.
“신욱아, 아니 강 목사님, 네가 부산에 왔다고 해서 내가 기뻤다”
“왜요?”
“니가 내 후배잖아. 후배가 오니까 선배가 좋아서 그러지”
“고맙습니다”
“내가 인마(친구)한테 술자리 한번 마련해 보라고 했는데 쉴드를 쳤다”
“목사한테 술자리를 마련하니까 그렇죠. 밥자리를 마련해야죠”
“아, 그렇나? 내가 잘못했네. 일 끝나고 밥자리 한번 하자”
“예”
선배는 곁에 목사를 앉히고도 계속 소주를 마셨다.
“신욱아, 아니 강 목사님, 미안하다. 정말 고맙다”
“목사 곁에 두고 술 마셔야 하는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몸 생각해서 이제 그만 드십시오”
“신욱아, 아니 강 목사님, 니가 진짜 목사다. 내 알고 있다”
“예? 어떻게요?”
“인마한테 다 들었다. 우리 마누라가 아주 착한 양은 아니고 점박이 양 정도는 되는데 좋은 곳에 갈 수 있도록 기도 좀 해도”
“천국은 착한 일 해서 가는 게 아니라 못난 것 인정한 죄인이 예수님 의지해서 가는 겁니다”
“아, 맞나?”
“점박이 양이든 까만 양이든 양이면 천국 갑니다. 제가 마음을 다해 잘 준비하겠습니다”
“신욱아, 아니 강 목사, 고맙다. 내가 정말 미안하다”
나중에 알게 됐다.
선배의 집안에, 처가에도 기독교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과 그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크다는 것을.
오랜 세월 그걸 술과 욕으로 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 있고, 소문으로만 듣던 후배를 거의 30년만에 만난 자리에서 만취한 상태로 ‘진짜 목사’라고 불러준 이유가 무엇일까?
그 마음엔 무슨 무거운 짐이 있길래 다른 표현은 하지 않고 술을 마시며 연신 내게 “미안하다, 고맙다”란 말을 반복한 것일까?
이후의 일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큰 슬픔을 당한 이 선배와 가정을 잘 위로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