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남서울평촌교회 담임을 사임하고 나 혼자 부산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두 달 남짓 지냈다.
그 때 같은 아파트에 아주 독특한 할머니를 보게 됐다.
왜소한 체구와 얼굴의 주름을 볼 때 족히 아흔은 되어 보이는데, 낮동안 아파트 내 도로 곁 개인 의자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내가 머물던 아파트가 단지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고 거의 차를 타고 다녔기에 아파트 단지 내를 걸을 일이 거의 없었다.
다만 차창 밖으로 보이는 그 할머니를 지나가며 계속 볼 뿐이었다.
그런 행색에 줄담배를 피우는 할머니 근처에 사람들이 가까이할 리 만무하다.
내가 보는 동안 할머니 근처에 있는 사람은 그만큼 나이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라고 했다.
한 번은 나는 일부러 동네 슈퍼에서 과자를 사서 그 할머니에게 드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나같은 사람, 특히 젊은 남자가 말을 건 적이 거의 없는지 깜짝 놀라듯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오?”
“옆 아파트에 사는 사람입니다. 늘 여기에 나와 계시더라구요”
“답답해서”
“담배만 피지 마시고 과자도 좀 드세요”
“고마와요”
할머니는 내 얼굴을 자세히 살펴 보며 앞니가 없는 입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후로 종종 과자를 사서 할머니에게 드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겠어요?”
“예”
“감사합니다. 과자 드세요”
“고마와요”
그해 6월말 이임식을 마치고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사 온 후로도 계속 그랬다.
그러다가 11월에 갑자기 서울로 올라가게 됐다.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겠어요?”
“예”
“제가 2년간 서울로 이사갑니다”
“그래요?”
“제가 다시 올 테니까 그 때까지 건강하게 계셔야 합니다”
할머니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그건 나도 모르지”라는 시크한 대답을 남겼다.
2년이 지나 2020년 12월 다시 부산으로 내려올 때 어렵사리 집을 구했는데 공교롭게도 바로 옆 단지 아파트로 오게 됐다.
오자마자 그 할머니가 생존해 계시는지 확인했다.
한겨울인데도 그 할머니는 거리에 나와 계셨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기회를 봐서 거리에 쪼그려 앉아있는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겠어요?”
할머니는 나를 빤히 올려다 봤다.
“모르겠는데”
2년간의 세월도 있지만 마스크까지 쓰고 있으니 알아볼 리가 없다.
“예전에 저 안 아파트에 살면서 할머니께 인사도 하고 과자도 드렸는데요”
“몰라”
“아무튼 제가 다시 왔습니다. 건강하게 계신 것 보니 좋습니다”
“고마와요”
“그런데 왜 불편하게 쪼그려 앉아 계세요? 의자가 없어졌네요”
“내 의자를 갖다 놨는데 누가 치웠어”
아마 좁은 보도에 개인 의자를 두고 앉아 줄담배를 피고 있으니 주민들 보행에 방해도 되고 예쁘지 않은 의자가 있으니 미관에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겨울에 너무 추우니까 할머니가 여기 나오지 마시라고 그랬나 보죠”
그래도 할머니를 위하는 마음으로 변호하려고 했으나 소용 없었다.
“나쁜 놈”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가 하루종일 바깥에 나와 줄담배를 피는 이유가 일찍이 20대 아들을 아깝게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다른 자녀가 없냐고 물었을 때 미국에 있다고 했는데 확인할 길이 없다.
그나마 의지가 됐던 남편 할아버지가 그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할머니는 정말 혼자이고 세상 사는 낙이 없을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도 종종 할머니를 찾아 인사도 하고 과자도 드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겠어요?”
할머니는 이제 기억하는 얼굴이 아니다.
어쩌면 세상의 일이나 사람들을 기억하려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주 전에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다.
점심 무렵이라 “할머니, 식사는 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대뜸 “담배 있어요? 있으면 하나만 주쇼”라고 했다.
독거노인이 끼니를 제때 챙겨 먹을 리가 없다.
그것도 삶의 의욕이 없을 뿐 아니라 삶이 원망스러운 이 할머니는 더더욱.
오늘은 안타까운 마음에 마스크를 벗어 보였다.
“할머니, 저 기억하시겠어요?”
“아니”
“담배만 피우지 마시고 과자도 드세요. 호두와 땅콩이 들었습니다”
“고마와요”
그냥 돌아서려다 다시 몸을 돌이켰다.
“할머니, 예수님 믿으시면 좋겠습니다”
“나 절에 가요”
“예, 절에 다녀도 좋습니다. 그냥 길에서나 집에서 너무 힘들 때 ‘예수님, 나 좀 도와주세요’ 하시기 바랍니다”
할머니는 가타부타 대답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