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내려올 때는 내려가야 한다는 마음만 확실했다.
내려와서는 사실 막막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할 지,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이 7개월간 계속됐다.
그저 서울에서 하던 대로 매일 20여명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뿐이었다.
부산에 내려온 지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기도하는 명단이 30명을 넘어섰을 때 비신자들과 성경공부를 하게 됐다.
벌써 넉 달째가 되었다.
이제 모임 장소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얼마전 금식기도의 기도제목 중 하나였다.
법적으로 무임목사로 오래 있는 것이 노회에서 보기에 덕스럽지도 않다.
이제 구체적으로 비신자를 지향하는 교회 설립을 준비하려고 한다.
일단 장소가 필요하다.
집이나 카페에서 모였는데, 매번 집을 청소하고 준비하는 것도 번거롭고 방에 들어가 두 시간 가까이 가만히 있는 아이에게도 미안하다.
오는 사람들도 편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카페에서는 눈치가 보여 성경책을 가져가 본 적이 없다.
같이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장소를 구하겠다고 알리니 일단 반기는 분위기이다.
장소를 구하려고 보니 선택사양이 별로 없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따지고 비교할 필요가 없어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속이 편하다.
구체적으로 교회 설립을 준비하려 하니 또 두려움이 생긴다.
‘잘 하고 있는 걸까?’
‘예전 담임목사 하듯 기획하고 관리하는 모드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내가 주님보다, 함께하는 사람들보다 너무 앞서가는 것은 아닐까?’
오늘 아침에도 비참한 나를, 연약한 나를 붙잡아 달라고, 만져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어떤 때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과 외로움이 엄습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엔 기도하고 마음에 걸렸던 바로 그 부분을 딱 풀어주시기도 한다.
욥의 심정이 조금 이해된다.
욥기 23:8-10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하나님의 일하심이 분명히 느껴지는데, 동시에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있다.
나도 나의 가는 길을 모른다.
오직 하나님이 아신다.
아시는 분이 인도하시고, 인도하시는 만큼만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제는 믿음으로 포장할 패기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무능력한 지를 안다.
또한 내 안에 있는 작은 믿음을 느낀다.
‘무능력을 알기에 믿음으로 가야지’라는 정답처럼, 교과서처럼 움직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능력 때문에 좌절하고, 믿음으로 가슴 벅차는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런 것이 인생이요 믿음의 여정이라 생각하지만, 이 준동(蠢動)은 전혀 길들여지지 않아 부끄럽고 피곤하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