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이 가족 휴가를 떠났는데, 다른 한 명이 와서 4인 테이블은 계속 만석이다.
계시록을 공부한다니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고 진도를 나갔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것 기억나세요?”
“아… 글쎄요”
“666이 진짜 이마나 오른손에 표를 받거나 칩을 심는 것이라고 했나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공부를 마치고 문을 나서면 거의 잊는다는 이야기가 겸손의 표현만은 아닌 것 같다.
“이마에 표를 받는다는 건 가치관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아들과 길을 가는데 큰 개가 나타났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이를 보호해야죠”
“예, 엄마들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자신의 등을 개쪽으로 돌리겠죠. 그건 엄마에게 ‘내가 상하더라도 아들을 지켜야 한다’라는 가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관은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이마에 666표를 받았다는 건 무엇을 판단할 기회가 생기면 재물, 학벌, 자랑 같은 세상적 가치관을 따라간다는 걸 말합니다”
“14장 1절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린 양’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그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키니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저는 하나님 백성입니까?”
“목사님이시니까 하나님 백성이겠지요”
“그러면 제 이마에 ‘어린 양’이나 ‘하나님’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 내 이마에 시선이 집중됐다.
“제 이마에는 아무런 이름도 없이 깨끗합니다. 그럼 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걸까요?”
이 모임을 만들어준 분의 이마를 가리켰다.
“이분은 머리카락을 내려 이마를 가리셨는데 머리카락을 올리면 예수님의 이름이 있을까요?”
“없는 것 들킬까 봐 가리고 다니는 것 아닐까요?”
“ㅎㅎㅎ”
“이마에 쓰여졌다는 ‘어린 양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이름’ 역시 가치관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건을 만나면 전후로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 도와주세요’, ‘손해봤지만 그렇게 하길 잘했다’ 또는 ‘내가 좀 손해보더라도 욕심부리지 말 걸’ 이런 생각들을 하지요. 물론 예수님 믿는 사람들도 처음엔 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생각합니다. 정우성이나 이정재 보면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죠”
“예, 잘생겼어요 ㅎㅎ”
“예수님 믿는 사람도 사람이니까 처음엔 시선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내 예수님을 향해 마음이 돌아갑니다. 모든 순간 성경말씀을 지키며 살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죠. ‘예수님이 날 구원해 주셨는데 내가 이렇게 살다니 부끄럽다’ 아니면 ‘예수님이 날 구원해 주셨으니 내가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것이 이마에 쓰여진 이름의 의미입니다”
“앞에 ‘시온 산’이 나오는데, 이곳은 다윗이 왕을 하기도 한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있을 때 수도 예루살렘이 있고 성전을 세우기도 했던 언덕의 실제 이름입니다. 고대 성읍들은 방어를 위해 언덕 위에 세워진 곳이 많았지요. 나중에 이스라엘이 망하고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기도 했을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돌아가서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곳’이란 의미를 가진 상징적인 의미로 많이 쓰였습니다. 지금 여기에서도 특정 지명이 아니라 그런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다음엔 144,000이란 숫자가 나오는데, 혹시 144,000이란 숫자 들어보셨어요?”
“아니요”
“신천지는 들어 보셨어요?”
“예”
“요즘엔 다른 이야기도 들립니다만, 신천지는 구원받는 사람들의 숫자를 144000명이라고 문자적으로 믿는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서울 지파 12000명, 부산 지파 12000명 식으로 지역별로 열두 지파가 있어 총 144,000명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성경 다른 곳을 찾아 보겠습니다. 계시록 7장 4절을 봅시다”
이젠 다들 성경앱을 갖고 있어서 내 폰을 보여주거나,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주지 않아도 된다.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고 했습니다. ‘인침을 받은 자’가 방금 우리가 본 ‘이마에 예수님의 이름이 있는 사람’ 곧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숫자가 144,000이랍니다. 그 근거가 바로 아래에 나옵니다. 유다 지파 12000명, 르우벤 지파 12000명… 우리나라도 족보를 보면 누구의 후손인데 그 아래 ‘파’가 나뉘기도 합니다. 저는 진주 강씨인데 박사공파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도 그런 ‘파’가 12개 있는데, 그걸 ‘지파’라고 부릅니다. 12개 지파에서 각 12000명이니까 144000명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으세요? 어떻게 각 지파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딱 12000명만 될까요? 만약 12000명이 찼는데 또 한 사람이 ‘저도 믿습니다’ 그러면 ‘12000명이 찼으니 너는 가짜다’ 그럴까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12라는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에 12지파가 있었고요, 혹시 예수님의 제자가 몇 명인지 아세요?”
“아니요”
“12명입니다. 온 세상에 열심히 전도하려면 120명쯤 제자로 삼아도 모라잘텐데 너무 적지요? 이건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꽉 차고 빠짐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1000이란 숫자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엔 10명을 담당하는 십부장, 100명을 담당하는 백부장, 1000명을 담당하는 천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0000명을 담당하는 만부장은 없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1000명은 한 군단을 의미하는 큰 숫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기 때문에 모든 구원 받는 사람들을 그 지파로 표현한 것이고, 빠짐이 없이 구원 받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12 곱하기 12 곱하기 1000인 144000이란 숫자가 나온 것입니다. 이건 실제 숫자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란 것이죠. 바로 아래 7장 9절을 보면 나와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요한계시록 7:9)
“이 사람들이 실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만의 사람들이 아니라 각 나라와 민족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능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습니다. 144000은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다시 신천지 이야기를 잠깐 하면 우리나라에만 열두 지파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만 채워지면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두 번째로 그건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아래에서 144000명이라는 이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지 밝힙니다. 7장 13절과 14절을 보세요”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7:13,14)
“이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셨다는 것을 믿은 사람들이란 의미입니다. 세상 사는 동안 그걸 믿었는데 정말 시온 산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할까요? 7장 10절부터 12절에 나와 있습니다”
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요한계시록 7:10-12)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기뻐서 큰 소리로 환호하고,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진심으로 찬송하겠지요. 다시 14장으로 돌아가면 그 내용이 나옵니다. 2절에 하늘에서 소리가 있는데 많은 물 소리같고 큰 우렛소리같다고 합니다. 천둥소리 같고 나이아가라나 이구아수같은 큰 폭포와 같은 굉음을 떠올려 보세요. 그런데 거문고를 타는 소리와도 같다고 합니다. 거문고 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는 어떤가요?”
“조용하고, 운치있고…”
“맞습니다. 거문고 소리는 조용하고 은은한데 천둥소리와 폭포소리같다고 하니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수많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찬양하는 소리는 그와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구원 받은 사람이 감사해서 자신만의 진지한 고백을 은은히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에 천둥이나 폭포같은 어머어마한 울림이 된다는 것입니다”
“3절에 오랜만에 이 단어가 다시 나왔습니다. ‘속량’ 전에 ‘구속’이란 단어 설명해 드렸죠? 값을 대신 치러 구원한다는. 바로 그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죄값을 치러 구원 받은 144000명이 바로 이 찬양을 하는 주인공들입니다. 아까 7장하고 이어집니다. 그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 외에는 이 노래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고백을 알지도 못하고 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오늘 처음 온 분은 최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며 변화가 일어난 분이라고 한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아서인지 열심히 메모했다.
처음부터 함께 공부한 분은 메모한 적이 없다.
대신 나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듣는다.
메모를 하든 열심히 듣든 성경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참 기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