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선악과를 먹은 후 주목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요?”
“죽어요”
“그래서 사람이 죽었습니까?”
“아니요”
“그럼 하나님이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신 건 잘못된 것일까요? 그냥 먹지 말라고 엄포로 말씀하신 것일까요?”
“글쎄요”
“사람이 죽고 사는 중요한 문제인데 남의 일이라 관심이 없으시네요”
“저희가 좀 그래요 ㅎㅎ”
“관심을 가져 주세요”
“예, ㅎㅎ”
“하나님이 분명히 죽는다고 했는데 여전히 살아있으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네요”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단절’입니다.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이 사람의 죽음이죠. 영혼과 육신의 단절이 죽음입니다. 그 육신의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영혼의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건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그분을 통해 안식을 누렸는데, 선악과를 먹고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두렵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아예 하나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싶은 겁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를 ‘영혼이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영혼은 불멸의 존재니까 죽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영혼의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아담과 하와가 그런 상태가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 말씀을 어기거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어떤가요? 여러분이 집에 딱 들어가면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죠”
“아담과 하와가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피해 에덴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아담이 ‘하나님’하고 나와야 되는데 아담이 보이지 않으니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셨다고 합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지금 아담이 어디 있는지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것일까요?”
“아니요, 아시겠죠”
“특히 아이들이 어릴 때 사고 치고 부모님이 집에 딱 들어오시면 아이들의 언행이 좀 어색한 것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요, 딱 보면 다 알죠”
“아이들의 잘못이 보이면 어떻게 하세요? ‘이 놈이 또 엄마 말을 안듣고 사고쳤어?’하며 다그치세요, 아니면 아이들이 스스로 고백하길 기다리세요?”
“아이들이 이야기 해주면 좋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디에 숨었는지 다 아시지만 ‘선악과 먹고 숨으면 내가 모를 줄 알아, 이 천벌을 받을 놈아’라고 하지 않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하신 건 아담과 하와에게서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하나님이 부모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키워 본 아빠나 엄마는 더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우리는 주로 인간의 입장에서 보고 아담과 하와의 위기에 집중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먼저 물으십니다.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먹었느냐?’ 그 나무의 효능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든, 하늘을 날 수 있게 하든 말이죠. 핵심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것을 먹은 것입니다. 자, 여기서 만약 아이들이 잘못해서 그걸 부모 입장에서 지적할 때 부모가 기대하는 아이들의 행동은 무엇입니까?”
“용서를 구하는 거죠”
“아까 하나님도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했지요. 그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게 뭘까요?”
“용서를 구하는 거요”
“맞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12절을 읽어 주세요”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제일 마지막에 있는 ‘내가 먹었나이다’만 하고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하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먹었나이다’ 앞의 내용은 모두 아담의 변명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가관입니다. 어쩌다 보니 먹게 되었다는 소박한 변명이 아닙니다. 먼저는 여자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여자가 줘서 먹었답니다. 남자가 사나이답게 ‘제가 잘못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남편인 저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치사하게 여자가 줘서 먹었답니다. 하와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내가 이런 놈을 믿었다니’ 했겠죠”
“부부사이 확 갈라지는 소리가 났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이 주셨다고 합니다. 잘못했다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궁극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는 것입니까?”
“하나님요”
“아담의 핑계와 변명을 들은 하나님 기분이 어떠셨을까요?”
“정말 안좋았을 것 같아요”
“더러웠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에게 더이상 아무 말씀 않으시고, 여인에게 묻습니다. ‘너는 왜 그랬냐?’ 여인은 뭐라고 대답했는지 13절 뒷부분을 보십시오”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인을 유혹한 뱀은 누가 만들었나요?”
“하나님요”
“결국 여인은 누구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네요”
“예, 남자나 여자나 ‘잘못했습니다’하는 사람은 없고, 전부 하나님께만 책임을 돌립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입니다. 안좋은 일만 있으면 모두 다른 사람 책임으로 돌리고, 궁극적으로는 믿지도 않는 하나님 책임으로 돌립니다. ‘하나님이 진짜 계시면 어떻게 이런 재앙이 일어날 수 있느냐?’라면서 말이죠.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변명이 없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