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여성들과 성경공부 – 아브라함을 부르심(2)

“이스라엘 땅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이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엄청난 요충지입니다. 이 말은 곧 늘 전쟁에 휘말리는 곳이라는 거죠. 아프리카의 이집트가 세력을 키우면 당연히 아시아 쪽으로 밀고 올라올 것이고, 아시아에서 바벨론이든 페르시아든 제국이 생기면 당연히 이스라엘을 거쳐 아프리카로 내려갑니다. 그런 땅에 아브라함이 들어간 것입니다. 12장 6절에 보면 이미 그 땅에는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들어가서 빈 땅을 마음껏 차지한 게 아니라 땅을 차지할 수 없는 나그네가 된 것입니다”

“6절에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 방문한 지명이 나옵니다. 어디라고 했죠?”
“세겜요”
“지도에서 한번 찾아보시겠어요?”
익숙한 우리 나라 지도에서 찾는 것도 아니니 금방 찾지 못했다.
기독교인에게는 우리 나라 지도만큼 익숙한 가나안 지도지만 비신자에게는 아프리카나 남미 어느 나라의 지도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지도에서 중간쯤 있는 세겜을 가리켰다.

가나안 지역 입체 모형 지도 [사진 강신욱]

“지도가 90도 왼쪽으로 누웠습니다. 그래서 이 지도에서 아래쪽은 남쪽이 아니라 서쪽이고 왼쪽이 북쪽입니다. 지도 아래쪽, 곧 서쪽 해안가 블레셋 평야라고 된 곳 보이시죠?”
“예”
“성경에 이스라엘과 계속 전쟁하는 민족이 나오는데 바로 ‘블레셋’입니다. 이 ‘블레셋’이 요즘 말로 하면 ‘팔레스타인’입니다. 지금도 블레셋 평야는 가자 지구라고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비옥한 평지로 내려가지 못하고 마치 우리나라의 태백산맥처럼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남북으로 이어진 해발 700-1000미터에 이르는 산지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곳이 바로 세겜입니다. 아래 8절에 보면 다음으로 옮긴 장소가 나옵니다. 찾아 보시겠어요?’
“벧엘요”

‘벧엘’이란 지명이 나오자 다른 한 분이 아는 척을 했다.
“아, 벧엘, 저 알아요. 길거리에 보면 가끔씩 벧엘이 있어요. 피아노 학원 이름에도 있고”
“맞습니다. 간판에 종종 벧엘이란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벧엘’이 무슨 뜻인가요?”
“히브리어로 ‘벧’은 ‘집’이란 뜻이고, ‘엘’은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의미지요. 예수님의 출생지인 ‘베들레헴’도 ‘벧’과 ‘레헴’이 합쳐진 말인데요, ‘레헴’은 ‘떡’이란 의미니까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빵집’ 또는 ‘베이커리’가 되네요”
“빵집 이름으로 좋겠네요”

“다음 장소인 벧엘을 지도에서 한번 찾아 보시겠어요?”
역시 금방 찾지는 못했지만, 40년 넘은 인생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이 머물렀던 세겜을 중심으로 지도를 보고 벧엘을 찾았다.
“잘 찾으셨습니다. 세겜과 벧엘이 지도에서 빨간 줄로 연결되어 있죠?”
“예”
“이것이 아브라함과 족장들이 목축을 하며 이동했던 경로입니다. 주로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지명들이 주로 이 빨간 선 걸쳐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되니까 좋은 일이 일어났을까요?’
“예, 그럴 것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게 쉽고 답이 뻔하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원해서 기독교인이 되었을 겁니다. 기독교인이라고 다 좋은 일만 겪고 사는 것도 아니고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 겪은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기근이었습니다. 10절에 보면 기근이 심해서 그 땅에 살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친지들과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아브라함은 순수하게 믿고 왔는데 어려움을 당한 것이죠.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닙니다. 고민도 있고 고생도 있습니다. 그런 인생을 사느라 신음소리를 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게 진짜 신앙이죠. 맹목적 신앙이 아닌 인격적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이게 뭡니까?’라고 원망하거나 ‘내가 잘못 들은 것을 괜히 우겨서 가나안으로 오자고 했나?’라고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인간이니 분명 개인적인 고민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에 노골적인 불만 표현이 없습니다. 그저 그 안에서 살 길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주어진 공간과 주어진 시간 안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은 거죠.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