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여성들과 성경공부 – 아브라함의 첩과 서자(2)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당신이 도대체 첩에게 어떤 신호를 줬기에 정실인 나를 첩이 업신여길 수가 있소?’한 거죠. 만약 아내가 이런 항의를 하면 남편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으로서 질서를 잡아주길 기대하겠죠”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여종이니까 당신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예? 진짜요?”
“좀 실망스러우신거죠?”
“예, 좀 의외인데요”
“아브라함이 현재도 이스라엘이 조상으로 여기며 자랑스럽게 여기고, 기독교에서는 믿음의 조상으로 위인처럼 여기는 사람이지만 성경은 아브라함을 특별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하고 연약하고 완전하지 못한 사람인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경은 위인전이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도 조건없이 임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는 놀라운 반응을 보입니다. ‘너 주제를 알고 처신 똑바로 해라’ 정도가 아니라 ‘학대’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임신부를 마구 대했던 모양입니다”
“예? 그것도 너무 했네요.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 좀 충격적인데요”
“그러게요. 거룩하거나 신비롭지 않고 너무 적나라하죠. 아마 하갈은 아브라함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배신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 서운했을 겁니다.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학대를 못 견딘 하갈이 집을 떠나 도망을 간 겁니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가 도망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어떻게 되는데요?”
“추노가 출동합니다”
“예? 추노요? ㅎㅎ”
“고대 사회에는 사람들의 이동이 많지 않았고, 신분은 고정적이었지요. 노예가 도망을 가도 잘 숨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금방 도망친 노예라는 게 티가 나기 마련입니다. 사실 하갈은 임신한 몸으로 대책없이 도망간 거예요. 진짜 불쌍한 거죠”

“근데 하갈이 어디로 도망했을까요? 만약 여러분들이 도망가고 싶으면 어디로 가시겠어요?”
나는 솔직히 ‘친정이요’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호텔이요. 속상한데 쭈글스럽게 모텔에 갈 수 없잖아요”
“예?”
“친정에 가겠어요, 친구집에 가겠어요? 뭐 소문낼 일 있어요? 남들 모르는 곳에 가야죠”
“아…. 예…”

“하갈이 어디 출신이라고 했죠?”
“이집트요”
나는 지도에서 헤브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브라함의 천막은 주로 여기 헤브론에 있었는데 하갈은 본능적으로 이집트 쪽을 향했습니다. 그곳으로 가도 반겨줄 사람은 없는데 말입니다. 파라오가 아브라함에게 노예로 보냈는데, 파라오에게 돌아왔다고 ‘잘왔다’라고 할까요? 파라오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고 엄벌을 받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곳은 사막을 지나야 했습니다. 임신부의 몸으로 사막을 지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창세기 16장 7절에 보면 하갈이 술 길에 이르렀다고 했는데요. 여기서 술은 마시는 술이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슈르’라고 ‘장벽’이란 뜻입니다. 이집트와 가나안의 경계 지점이라는 거죠. 하갈이 거기까지 간 겁니다”
다시 지도에서 이집트와 가나안의 경계 지점을 가리켰다.
“하갈도 참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