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아비멜렉 사건을 통해서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몸으로 회춘했다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아비멜렉이 전혀 사라를 가까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라가 가진 아이는 아비멜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도 증명됐습니다. 우리는 지금 일이 다 지난 다음에 몇 줄로 정리된 글로 읽으니까 동화책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이런 일들을 겪을 당시에 그분들의 심정을 한 번 생각해 보시면 조금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했을 때는 ‘나를 놀리시나?’ 했다가, 기적같이 회춘을 하니 인생을 다시 사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가, 아비멜렉이 사라를 빼앗아 갈 때는 허탈하고 절망했다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막아줄께’하신 게 아니라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막았다는 내용을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요? 우여곡절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밋밋하게 느껴지는 상황들을 겪은 겁니다”
“정말 그러네요”
“정도는 조금 약할지 몰라도 우리가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지요. 한 편에서는 좋은 일이 생겼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예상치 못한 불행이 찾아 오고, 한 편에서는 일이 풀렸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수 년째 일이 꼬이기만 하고”
“맞아요”
“우리 모두 웃는다고 다 좋은 게 아니고, 운다고 다 슬픈 게 아닌 참 얄궂고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도 다 지나고 나면 ‘그 땐 그랬지,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려고 그 때 그런 일을 겪게 하신 것이구나’라며 깨닫게 되겠지요”
모두가 인생을 초월한 듯한 깨달음을 얻으려는 순간 내가 마지막 한 마디를 더 얹었다.
“그건 그 때고, 지금은 힘들어요”
“목사님, 어쩌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큰 그림을 갖고 계시지만 우리는 그 그림을 잘 알지도 못하고 지금 어느 부분의 퍼즐이 맞춰지고 있는지도 모르니 일희일비하게 된다는 거죠. 그게 인생이니까 즐거울 땐 웃고 힘들 땐 울면서 살자는 겁니다. 다 깨닫고 다 초월하려는 부담감없이”
“하나님이 전에 말씀하신대로 사라는 1년만에 아들을 낳았고, 이름을 이삭이라 하였고, 사라는 ‘전에는 하나님이 내가 어이없어 실소하게 하셨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웃게 하셨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언약의 징표로 요구하셨던 할례를 행했습니다. 모든 문제가 사라지고 이젠 행복하게 사는 것만 남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잘 살았을까요?”
“아니요”
“어떻게 아세요?”
“인생이 그런 게 아니라면서요”
“저는 또 성경을 알고 그러시는 줄 알았어요 ㅎㅎ”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죠. 불길한 사건은 이삭이 젖을 떼는 걸 기념해서 잔치를 벌인 날 일어났습니다. 참 얄궂죠.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걸 사라가 직접 본 겁니다. 이 때 이스마엘은 10대 후반이고 이삭은 4살 정도 됐을텐데, ‘놀리다’라는 단어가 약간 성적인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희롱하다’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고요. 나이 많은 이스마엘이 아주 어린 이삭을 어떻게 대했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멸시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건 확실합니다. 엄마인 사라는 눈에 불이 튀었겠지요. 사라는 바로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로 매몰찬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이스마엘도 어쨌든 아브라함의 아들이니까요. 아브라함은 밤새 고민했습니다. 이럴 땐 아빠와 엄마의 입장과 생각이 참 다른 것 같아요”
“엄마는 그래서 서운한 것 같아요”
“아브라함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 건지, 아브라함의 꿈에 말씀하신 건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일로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신 거죠. 이스마엘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책임지시겠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 일찍 빵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워줬다고 했는데요. 이건 말이나 나귀같은 짐승은 한 마리도 없이 그냥 둘만 내보낸 것을 말합니다. 밤새 고민한 것에 비하면 조금 인정머리없이 내보낸 거죠”
“그러네요. 가축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재산을 떼 준 것도 아니고 몸만 내보내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