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좀 더 짓고요”

3월 코로나 자가격리로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낸 후 테니스 레슨을 받고 있다.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기에 두 명의 코치 중 일부러 연세 드신 분을 택했다.
알고 보니 일흔이 넘으신 테니스 소장님이었다.
“저는 나이가 많아서 레슨도 많이 받지도 못하고 살살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소장님께 받는 거니까 계속 살살해 주십시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20분씩 레슨을 받고 있다.

어쩌다 내 직업 이야기가 나왔고 목사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제 마누라가 권삽니다. 새벽기도까지 거의 안빠집니다”라고 했다.
며칠 뒤 소장님이 물었다.
“목사님은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교회당이 없습니다”
“예?”
나는 비신자들을 만나서 성경공부하고, 주일에는 오후 늦게 다른 교회 예배당을 빌려 예배한다고 알렸다.
처음에는 ‘그런 교회도 있나?’라는 분위기였지만, 내가 일찍 가거나 늦게까지 다른 사람 공까지 치우는 걸 보더니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오늘도 레슨 마치고 다른 사람 공까지 치우려고 하자 “목사님, 거기까지만 하시고 그만 가세요”라고 했다.
가면서 내가 “소장님은 휴가 안가십니까?”라고 물었다.
“ㅎㅎ 금요일에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먼저 말씀하시네요”
“다들 7월말 8월초에 휴가를 가는데 소장님도 가셔야죠”
“8월 1일하고 2일 휴가 가려고 합니다. 목사님은 화요일 한번만 빠지는 겁니다”
“다음 주에 쉬시는 군요”
“다른 데 가서 일해야 합니다”
“예?”
“아들이 송정에서 치킨집 하는데 가서 도와줘야 합니다. 한 철 장사인데 대목이잖아요. 평소에도 가족끼리 했는데 갑자기 사람을 쓰려고 하면 누가 오나요? 제가 가서 도와야죠”
“아이고, 휴가가 아니라 더 바쁘고 피곤하시겠네요”
“아들이 1시까지 하니까 아침에 못일어나요. 그래서 저희 마누라가 낮에 가서 도와줍니다. 그런데 여름에는 너무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그런지 새벽기도에 빠집니다. 우리 마누라는 새벽기도 절대 안빠지는 사람이거든요. 하나님도 봐주시겠지요?”
“그럼요. 너무 피곤한데 무슨 새벽기도입니까? 제가 수도권에서 목회할 때 수요예배에 안수집사님이 오셨길래 ‘저녁은 드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뇨, 직장에서 바로 오는 겁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그럼 밤 10시가 다되어 식사하시는 거잖아요? 다음부터는 수요예배 오지 말고 그냥 집에 가서 저녁 챙겨 드십시오’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소장님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우리 마누라는 진짜 착하고 이쁩니다. 꼭 천국 갈 겁니다. 이것 보세요”
휴대폰에서 부인의 사진을 보여줬다.
흐릿했지만 미인이었다.
“오, 정말 미인이시네요”
다른 사진도 계속 보여 주셨다.
그러다가 부인의 처녀적 사진을 찾게 됐다.
“이 때가 처녀 때입니다. 선물 가게를 했는데요. 진짜 이쁘죠?”
“우와, 정말 미인이신데요. 반할 만하십니다.”
“며느리한테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아직 아흔 넘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매일 빨래하고 진짜 고생이 많습니다. 제가 업고 다녀야 하는데 그렇게 못해주네요”
“그래도 아직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잖습니까?”
“그거는 그렇지만 더 잘해줘야 하는데”
“같이 교회 가주시면 돼죠”
“저는 아직 교회 갈 생각이 없습니다”
“왜요?”
“죄 좀 더 짓고요. 담배도 펴야 하고”
“담배 피는 게 몸에는 나쁘지만 죄는 아닌데요”
“그것 말고도 좀 더 있습니다. 욕도 해야 하고”
“욕 좀 하셔도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도 욕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어떤 못된 사람 보고 ‘여우’라고 했는데, 그건 우리말로 하면 ‘개새끼’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에 유교가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아, 그런 건가요?”
“도덕 군자만 예수님을 믿는 것 아니고, 예수님을 믿었으니 도덕 군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어떤 사람이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으니 복음이죠”
“아,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