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1)기적같은 6개월만의 모임

지난 5월에 비신자 여성들의 성경공부가 창세기 25장으로 마무리 되었다.
2021년 7월부터 시작했을 때는 4명이었지만 3명으로 굳어졌는데, 그 3명에게 모두 사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 명은 사업을 시작했고, 한 명은 집안 일을 돌봐야 할 사정이 생겼고, 한 명은 음반 제작을 하게 됐다.
나는 그동안의 모임 기록을 정리했고, 지난 9월 21일 ‘대화로 푸는 성경’이란 책을 냈다.

각자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창세기 26장을 이어서 공부할 수 있을까?’라는 염려가 생겼다.
작년 여름에 더위만큼이나 뜨겁게 시작해서 코로나의 대유행도 겪으며 1년 가까이 지속하며 내용이 쌓여 책도 냈던 일이 일장춘몽처럼 느껴졌다.
사정을 뻔히 아니까 현실적으로 다시 모여 성경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여기까지인가? 이분들과 다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백일몽인가?’ 몇 번이나 자문했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처음을 떠올렸다.
‘2020년 내가 부산에 내려올 때만 해도 이분들을 전혀 모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말 우연히 하나님이 연결시켜 주시고, 처음보는 목사와 전혀 성경공부를 할 것 같지 않은 분들이 선뜻 성경공부를 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내가 바란다고 될 일도 아니고 계획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지금 내가 할 일은 모임을 만들어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라며 몇 번을 되뇌였다.
당연히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두려움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신당부했던 신명기 말씀도 떠올렸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신명기 7:19)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와 기대와 기다림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기도와 기대와 기다림을 잘했다는 게 아니다.
참 힘들었다.
기도는 막막했고, 기대는 무너졌으며, 기다림은 막연했다.
솔직히 책을 출간하는 설렘과 기쁨보다 모임을 할 수 없는 답답함과 슬픔이 더 컸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11일 그분들과 다시 만났다.
물론 그 전에 개업을 축하하거나 우연히, 아니면 다른 일로 만난 적은 있다.
그러나 성경공부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
9월 21일에 자신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고, 심지어 실명을 공개하며 소감문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20일이 지나서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서로가 바빴다.

책이 나오고도 20일 만에 만난 주인공들 [사진 강신욱]

이 자리에서 이어서 공부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감사하게도 다들 폭풍처럼 바쁘고 힘든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뭔가 인생을 점검하고 채우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고도 했다.
격주로 이어지던 성경공부가 그런 시간이었다고도 했다.
서로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나눴다.
이전에는 오전 10시 30분이었는데, 이제는 오후 3시에 모이기로 했다.
4시간 30분의 간격만큼 각자의 삶이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 멤버가 한 명 늘었다.
처음 이 공부모임을 주선한 분의 소개로 낮은울타리 주일예배에 참석한 분이 있었는데, 마침 일요일과 월요일 연휴일 때였다.
집이 거의 부산 반대편이라 할 수 있는 영도였기 때문에 오가는 데에만 3시간 이상 걸렸다며 주일예배에 참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대신 상대적으로 덜 막히는 주중 성경공부에는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아는 분이 있으니 이 모임이 어떠냐고 했더니 좋다고 했다.

11월 8일 화요일 오후 3시 드디어 4명의 여성이 낮은울타리에 모였다.
6개월 만에 다시 모인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때도 기적 같이 모였지만, 일상이 될 것 같다가 중단되었기에 6개월 만에 다시 모인 이 모임이 내겐 정말 기적 같다.

이분들은 마치 지난 주에도 모였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내가 슬쩍 자리를 피해 서재 책상에 앉아 다른 일을 해도 회포를 푸느라 내가 안중에도 없다.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낮은울타리를 동네 사랑방처럼 편하게 여기고 소파에서 바닥으로 내려앉아 커피를 마시고 과자를 먹는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나는 그렇게 6개월 만의 기적을 즐거워했다.

매일 낮은울타리 기도상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마다 먼저 암송하는 구절이 있다.
낮은울타리 도배를 마치고 기도할 때 불현듯 떠오른 말씀이다.
나는 하나님이 낮은울타리와 내게 주신 말씀으로 여기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이 구절을 암송한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2-3)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본다.
하나님이 만들며 성취하신 일을 본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비신자들이 목사 앞에서 즐겁게 모인 걸 본다.
내 앞에 이루어진 기적을 본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행하실 일과 성취하실 일과 크고 은밀한 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