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2)예열하기

시즌1을 지난 덕분인지 이번에는 6개월 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30분 정도 지나니 공부하자며 자리를 옮겼다.
오전에 모였던 시즌1과 달리 오후 3시에 모임을 시작하니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먼 길을 가야하는 분들이 “이제 공부하자”고 이야기를 꺼낸 덕분이다.

성경공부라 하면 일반적으로 성경 본문을 먼저 읽는 것을 예상한다.
그러나 이분들과 공부하며 성경 본문을 같이 읽으며 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비신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성경 본문을 읽는 것 자체가 장벽이 될 수 있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목회 현장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기 위해 교회에 나오고 소그룹까지 참석한 열심을 냈는데 갑자기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내막을 알고 보니 소그룹 리더는 늘 하듯이 “오늘 본문을 한 절씩 돌아가면서 읽읍시다”라고 시작했고, 모임에 처음 참석한 분 차례가 되었는데 매끄럽게 잘 읽지 못하고 버벅거린 것이다.
사회적으로 괜찮은 지위도 가진 분이 사람들 앞에서 한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친 것이 너무 불편하셨던 것 같다.
기존 신자에게는 성경이 익숙하지만 비신자에게는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문체도 익숙하지 않아 신자들과 같은 속도로 소리내어 읽기 어렵다.
게다가 신자들이 성경 읽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

6개월 동안 성경을 떠나 있었던 분들을 다시 성경 이야기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일단 26장 1절을 내가 읽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는데 그 땅에 또 흉년이 들었대요. 아브라함 때 흉년이 들었던 이야기 기억하세요?”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란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ㅎㅎㅎ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오늘이 화요일인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그저께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들은 설교를 기억할까요? 거의 기억 못합니다. 저는 주중에도 늘 설교 생각을 하고, 토요일은 거의 다른 일을 하지 않고 밤잠을 설쳐 가며 힘들게 설교를 준비하거든요.”
“목사님도 설교 준비를 힘들게 하세요? 성경을 잘 아시니까 그냥 술술 나오는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여러분들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려고 애쓸 뿐이지 준비는 힘듭니다. 게다가 설교는 다양한 계층과 형편의 사람들을 상대로 혼자서 30분 넘게 내용과 논리를 가지고 말해야 하니 준비를 더 잘해야 하지요. 저는 설교를 힘들게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으세요.”
“오래 전 일입니다. 한 번은 교회 일도 열심히 하는 대기업에 다니는 남자 집사님에게 물은 적이 있어요. ‘집사님,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주일 설교를 들으면 언제까지 기억하세요?’ 깜짝 놀랄만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솔직히 대답하라고 하시니 정말 솔직하게 대답하겠습니다.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까지는 기억하는데요, 월요일 지나면서 거의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솔직히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은 했지만 정말 허탈했습니다. ‘이럴거면 내가 굳이 힘들게 설교준비를 할 필요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기억력이 약한 분이 아니거든요.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고요. 여러분도 남편이 여러분을 서운하게 한 일, 시어머니가 속상하게 한 말, 생생하게 다 기억하시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딱 성경 말씀만 잊어 먹는 건 너무 이상하지 않나요?”
“그러네요.”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셨어요. 사탄이 말씀을 도둑질하는 겁니다.”
“성경에 그런 말씀이 있어요?”
비신자 후배들을 전도해 달라고 내게 소개한 분이 처음 듣는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씨 뿌리는 비유’에 네 가지 땅이 나오지요. 그 중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새가 와서 먹는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시길 마귀가 말씀을 도둑질해가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아~, 기억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겪는 이야기이군요.”
“그럼 우리가 전에 배웠던 것 기억하지 못하는 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 아니죠?”
“그럼요. 다들 살림하고, 아이들 챙기고, 남편 일 돕고, 또 개인 사업도 하시잖아요. 머리가 나쁘면 이런 것 다 못하죠.”
“맞아요.”
“그런데 성경 말씀만 잊어 버리는 건 이상하잖아요. 까맣게 잊어버리니까 가르치는 목사가 할 일이 있어 좋기는 하지만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라는 의식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귀라는 놈이 내가 들은 말씀을 도둑질해 가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고, ‘마귀, 이 나쁜 놈’이란 생각도 하고, ‘내가 마귀에게 말씀을 도둑질 당하지 말아야 되겠다’ 결심도 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잊는 건 좋은데, 단순히 잊고 ‘ㅎㅎㅎ’ 웃지 말고 방금과 같은 의식의 흐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겠네요.”

6개월의 간격이 길긴 길었나 보다.
창세기 시즌2는 예열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