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된 11월 25일 오후 4시 먼저 전화벨이 울렸다.
“목사님, 저희들 왔습니다. 곧 올라가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오늘 서울에서 내려온 막내(올해 60세)의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이내 71세와 64세 언니들과 함께 낮은울타리로 들어왔다.
나는 먼저 다시 뵙게 되어 감사하다고 했다.
집안의 종교적 배경이나 집이 각각 명지와 개금이라는 거리적 여건으로 봤을 때 낮은울타리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음료를 드시겠냐고 묻고 음료를 준비하는 동안, 언니들은 바리바리 싸온 음식을 꺼냈다.
깐 밤, 감 말랭이, 상투과자 등이 나왔다.
깐 밤과 감 말랭이는 그냥 비닐주머니에, 상투과자는 테이크아웃 컵에 담겨있었다.
세 자매는 마치 20대 자매들처럼 상투과자는 서울 스타일 포장이고, 깐 밤과 감 말랭이는 시골 스타일 포장이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깔깔 웃었다.
“목사님도 한번 드셔보세요.”
“예, 제가 좋아하는 간식들이네요. 이런 간식은 먹기 힘든데, 제가 은근히 입맛이 시골 스타일인 모양입니다.”
“제가 오늘 또 약속이 있어 6시에 나가야 하니 자리를 옮겨 공부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공부방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막내분은 “목사님, 시키실 것 있으면 저에게 시키세요.”라고 말하고 자리를 비켰다.
언니분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속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오늘은 성경, 기독교, 교회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불편한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제가 아는 데까지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세요?”
“저는 유독 기독교가 서로 이단이라고 하면서 비난하는 게 싫어요.”
“불편해 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서로 비난하는 모습은 참 좋지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단’은 기독교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종교에 다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도 이단이 있어요?”
“그럼요. ‘이단(異端)’은 ‘다를 이(異)’ 자에 ‘끝 단(端)’ 자를 씁니다. 한 뿌리 같고 한 몸 같은데 끝이 다르다는 말이지요. 혹시 이것이 무엇처럼 보이세요?”
나는 패드에 뱀의 혀 모양을 그렸다.
“사람 인(人)처럼 보이는데요.”
“아, 제가 위를 너무 짧게 그린 모양이네요.”
윗부분 선을 더 길게 그렸다.
“이제 뭐처럼 보이세요?”
“음…”
“저는 뱀의 혀를 그린 겁니다.”
“아… 그렇게 보이네요.”
“뱀의 혀는 끝이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로 시작한 것 같은데 나중에는 아니예요. 뱀의 혀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거짓말의 상징이죠. 이단은 거짓말하는 무리를 말합니다. 100% 거짓이면 사람들이 다 알아차릴 겁니다. 그러면 아무도 따르지 않겠지요. 기존의 진리와 비슷하게 가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진리에 없는 이상한 것을 집어 넣고 다른 구원의 길을 말하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합니다. 이단이라고 지적 받은 쪽은 당연히 반박하겠지요. 그러나 이단이 타겟으로 삼는 대상인 정통종교에서는 그 이단의 거짓됨을 부각시키고 교인들을 그 이단으로부터 지키려고 애쓸 수밖에 없습니다. 비단 기독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가 그러면서 각자 무엇을 믿는가를 확인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이분들은 불교 배경의 집안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다.
나는 짧은 지식이지만 먼저 불교에 대해 말했다.
윤회와 해탈, 원효와 의상, 소승불교와 대승불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불교 안에 있는 여러 종파를 말했다.
천주교에도 여러 수도회가 있고, 이슬람교에도 심하게 대립하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있다고 했다.
타종교 사람들이나 심지어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 대립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지만 성직자라 불리는 종교지도자들은 서로 용납할 수 없는 선이 있다고 했다.
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종교들도 속상하게 여기는 이단이 있을 것이라 했다.
“성경에는 분명히 구원 받을 수 있는 이름은 ‘예수’밖에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실패했다고 하면서 자기가 진정한 구원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게 하지 않고 성경 구절을 곳곳에서 임의로 모아서 자기들만의 교리를 만들고, 공부하는 책을 만들어 그것만 보고 알게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단입니다. 성경은 ‘예수’가 구원자라 말하는데, 성경이 ‘다른 예수’를 가리키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면 교회는 ‘그건 아니다.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해야죠. 자식이 잘못된 길을 갈 때 참 부모라면 자식을 나무라더라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볼 때 진정한 친구라면 친구가 불편해 하더라도 ‘정신차리라’고 바른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찬찬히 말해주지 않고 다짜고짜 원색적으로 비난하면 사람들은 당연히 불편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성경에 ‘예수님’이 구원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시지요?”
“예.”
“그럼 다른 사람이 자기가 ‘구원자’라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잘못이지요.”
“기독교 이단을 구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예수’가 아닌 자기가 구원자라고 하고, 자기를 믿어야 된다고 하고, 자기들에게만 있는 비밀스런 지식이 있다고 하고, 자기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단입니다. 저는 ‘신천지’와 ‘하나님의교회’를 다 만나 봤습니다.”
“예? 목사님이요? 어떻게요?”
“고등학교 때 ‘신천지’에 다니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신천지인 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신천지였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이라는 건 급우들이 다 알고 있는데, 한 번은 저에게 성경에 관해 이야기를 좀 하자는 겁니다. 그래서 일요일 오후에 만나서 3시간 정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구약의 다니엘과 에스겔, 그리고 신약의 요한계시록에서 주로 환상의 내용만 뽑아 임의로 만든 책을 보여 주며 저에게 자기가 믿는 이야기가 진리라며 말하더군요. 이 친구는 원래 기독교가 아닌 것을 알고 있었기에 ‘넌 이걸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3주짜리 성경공부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3주짜리 공부로는 나름 탄탄한 모태신앙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는 저에게 접근하지 않더군요.”
“대학 1학년 때는 기독교인이었는데 ‘하나님의교회’로 빠진 친구가 있었습니다. 원래 같이 찬양도 하고 노방전도도 하는 친구였는데 어느날 그쪽으로 빠졌더라고요. 하루는 저를 만나서 평소 하지 않던 성경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제가 다양한 다른 성경을 근거로 이야기하니까 실제 성경을 열심히 읽지 않았던 그 친구는 저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성경을 가르쳐 준 목사님을 만나보자고 하는 겁니다. 저는 그러자며 당당하게 응했습니다. 부전동의 작은 교회였는데 교회 느낌이 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목사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 대학 1학년인 저로서는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완전히 깨졌습니다. 그 사람은 ‘안상홍이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정말 어울리지 않게 양복을 입고 흰 말을 타고 있는 웬 할아버지 사진을 표지로 둔 성경공부 교재를 봤습니다. 그리고 찬송가 비슷한 책도 봤는데요. 혹시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찬송가 아세요?”
동생분이 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을 나왔다고 들었기에 혹시나 해서 질문했다.
“알지요.”
“그 책을 열어보니 찬송가와 악보도 거의 똑같이 생겼는데 ‘안상홍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예? 정말요?”
“그냥 웃음이 나오더군요. 자기를 하나님으로 믿게 하려면 좀 새로운 노래를 짓던가 하지 ‘새노래’라고 하면서 그대로 베끼는 건 너무 아니더라고요.”
“ㅎㅎㅎ 그러네요”
“나중에 요한계시록까지 가서 두 감람나무가 나오는데 그 감람나무 하나가 바로 ‘안상홍’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나머지 하나는 누굽니까?’라고 물었더니 비밀이라는 겁니다. ‘가르쳐 줘야 믿을 것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이만희’라는 겁니다. 저는 속으로 ‘혹시 문선명이라고 할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생소한 이름이라 황당했습니다. 그때는 ‘이만희’도 모르고 ‘신천지’도 모를 때라 그냥 ‘이만희’라는 이름만 기억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천지’의 교주더군요.”
“그 친구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 친구는 나중에 ‘하나님의교회’에서 나와서 지금은 건전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친구에게 물었는데 자기가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성경을 많이 아는 저에게 질투심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속성으로 성경을 가르쳐 준다고 하니 가서 배웠다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교회에 성경공부라는 게 거의 없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나 주제별로 성경구절에 대한 것만 조금 공부하는 수준이어서 갈급했던 모양입니다. 교회에 1,2년 다녔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게 느껴지고 알고 싶은 건 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빠지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요즘은 공개된 성경공부 프로그램이나 좋은 책들이 많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무리들이 이단입니다. 이들이 또 어이없는 주장을 펼치는데,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던 안상홍이나 문선명이 죽어버린 겁니다. 교주가 죽으니 난감해졌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니라 어머니도 있다’라며 상대적으로 젊은 아내였던 장길자와 한학자를 각각 ‘하나님 어머니’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어머머, 그래요? 전혀 몰랐네요.”
“어이 없는 주장이고 성경에는 전혀 없는 내용이지요.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그들을 이단이라고 하고 경계하는 겁니다.”
“그렇군요. 목사님이 이렇게 설명해 주시니까 기독교를 믿고 안믿고를 떠나 상식적으로라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잘 들어 주시고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