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겁니까, 예수님을 믿는 겁니까?”
“우와, 정말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믿음을 가지려면 누구를 믿는 건지 번지수를 확인하고 제대로 믿어야죠.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건지 예수님을 믿는건지 모르면 안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도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냥 궁금해서 물어 본 건데 중요한 질문이었네요.”
“예, 이 질문이 기독교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가장 믿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요.”
“이게 가장 어렵다고요?”
“예, 혹시 삼위일체라고 들어보셨어요?”
“예.”
미션스쿨에 다녔다는 동생분이 들어봤다고 했지만, 언니는 금시초문이라는 인상이었다.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에는 들어본 게 유익일까, 금시초문이 유익일까?
“이 ‘삼위일체’가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존재형식입니다.”
말을 끝내고 내가 한 말을 후회했다.
두 분의 표정을 보니 내가 한 말이 일절 도움이 되지 않은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신앙의 대상’, ‘하나님’, ‘존재형식’ 등 모두 일상의 어휘가 아니니 당연하다.
“에…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건가요?”
“성자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세 분이신 건가요?”
“아니요. 한 분이십니다.”
“방금 셋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어렵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 인(人)’자를 써서 ‘인격(人格)’이라고 하는데,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 ‘인격’이라 하지 않고 ‘위(位)’자를 써서 ‘위격(位格)’이라고 합니다. 분명히 독립된 다른 존재인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 분들의 지위와 지혜와 능력과 영광이 동일하고 누가 우월하거나 누가 기울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 분인 건 맞네요.”
“절대 아닙니다. 어디가서 저에게 그렇게 들었다고 하시면 제가 이단이 됩니다.”
“아니 셋이라고 해놓고 왜 셋이 아니라고 하세요? 복잡하네요. 하나님이 그냥 한 분 하시지, 사람 헷갈리게.”
“그러게 말입니다. 목사가 설명하기 쉬워야 전도도 잘 될 텐데, 목사가 설명하기도 어렵게 왜 그러셨는지 저도 답답합니다.”
“ㅎㅎㅎ 목사님도 답답하세요?”
“예, 누굴 믿는지 속 시원하게 답을 할 수가 없으니 저도 답답하지요. ”
“ㅎㅎㅎ 목사님이 답답하다고 하니까 너무 웃깁니다. 근데 솔직히 말씀해 주시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이라 어릴 때부터 믿었으니까 삼위일체를 그냥 믿는다고 했지만 사실 이해가 되지 않고 설명은 더더욱 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가서 삼위일체를 배웠는데 ‘삼위일체’보다 더 어려운 단어와 개념으로 공부하니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이건 ‘신의 존재양식’이니까 그냥 신비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은 사건을 통해 삼위일체를 조금 이해하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가서 이런 겁니다”
"엄마, 나이키 사주세요."
"안돼."
"왜요?"
"너무 비싸."
"신고 싶어요. 좀 사주세요."
"아빠에게 가서 여쭤봐."
"아빠, 나이키 사주세요."
"안돼."
"왜요?"
"너무 비싸"
"엄마랑 아빠는 똑같애."
“ㅎㅎㅎ 맞아요. 그런 일들이 있지요.”
“엄마랑 아빠는 분명 다른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이 눈에는 엄마랑 아빠가 똑같은 존재로 비춰졌습니다. 엄마랑 아빠는 한 사람은 주방에 있고, 한 사람은 책상에 있는데 기준과 대답이 똑같았기 때문이죠.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 아시죠?”
“알지요.”
“부부가 어떻게 ‘일심동체(一心同體)’입니까? 분명히 다른 존재이고 마음도 두 개인데 말입니다. 그것이 부부의 존재양식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에게 벗은 몸도 보였지만 커서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벗은 몸도 보이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같이 누리고 하나가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참 신비로운 존재양식이지요.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겁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신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라고 복수형으로 언급되는데, 서로 의논하고 마음을 하나로 하는 것같은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이 만들어졌는데 하나님이 눈이 2개이고, 귀가 2개이고, 손이 2개이고 손가락이 10개인 것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셋이 하나라는 존재양식입니다. 그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신의 형상이 사람에게 희미하게 비춰진 것이 ‘일심동체’라는 부부입니다. ‘일심동체’는 기독교 용어도 아닌데 말입니다.”
“아, 이제 이해가 되네요. 결국 하나님은 세 분이네요.”
“세 분이라고 하면 안된다니까요.ㅎㅎㅎ”
“아, 정말 복잡하네요. 셋인데 셋이라고 하면 안되고 하나라고 해야 하다니. 하나님 믿기 정말 어렵네요.”
“맞습니다. 하나님 믿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중간에 있는 목사는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목사님이 정말 어려울실 것 같아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런데, 저는요. 제가 제 머리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겁니다.”
“예? 목사님이 하나님을 안믿어요?”
“제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두 분은 수십 년 같이 살아온 남편을 이해하십니까?”
“아니요, 그 속을 알 수가 없지요.”
“두 분이 낳은 자식들 속은 아시겠습니까?”
“도통 알 수가 없지요. 이제 다 컸으니 알아서 사는 거죠.”
“두 분 앞에서는 짧은 인생이지만 저도 조금 살아보니 저 자신도 모르겠고, 제가 낳고 기른 자식도 그 속을 모르겠는데, 사람도 이해하지 못하는 제 머리로 하나님의 본질과 존재양식을 이해한다면 그게 신이겠습니까? 제 머리로는 레고같은 단순한 장난감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어서 믿는 게 아니라 이해되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니까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 겁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다만 사람처럼 서로 좋아서 ‘우리 셋이 뭉쳐서 하나가 되자’라고 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별도로 존재할 수 없는 하나로 존재하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런 분입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분을 믿는 거네요.”
“정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