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18)30:37-31:20

“야곱이 가만히 있으면 품삯도 받지 못하고 평생 머슴처럼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처자식도 있는 가장인데 말이죠. 외삼촌의 그런 조치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야곱이 아닙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가지를 베어 일부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 떼가 물을 마시러 올 때 개천 앞에 그 무늬 있는 나뭇가지를 세워 두었는데, 그것을 보고 새끼를 밴 양들이 얼룩양과 점 있는 양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게 가능한가요? 무늬 있는 나뭇가지를 보고 새끼를 배면 얼룩양을 낳는다고요?”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죠. 만약 무엇을 봤다고 그런 새끼를 낳는다면 차라리 소나 낙타를 보게 하는 게 훨씬 낫죠. 소나 낙타가 훨씬 비싸니까요. 이걸 가지고 ‘바라봄의 법칙’ 운운하는 건 억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방법을 가르쳐 준 건 가요?”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다고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야곱이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 자기 딴에는 머리를 쓴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미신적인 방법이지만 나름 용의주도한 면도 있었습니다. 튼튼한 양에게는 가지를 보여 주고, 약한 양에게는 가지를 보여 주지 않은 겁니다. 희한한 건 튼튼한 양은 얼룩양이나 점박이 양을 낳고 약한 양은 단색 양을 낳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야곱은 점점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부자가 되었으니까 나뭇가지 방법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면 모두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이고, 그 과정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흰색과 베이지색 양만 있는 상황에서 무늬 있는 나뭇가지를 양에게 보여 주고서라도 자기 품삯을 챙기고 싶은 야곱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행동으로 봐야죠. 야곱은 인간적인 방법을 썼지만 하나님이 그걸 그냥 사용하신 거죠. 야곱이 굳이 나뭇가지 방법을 쓰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은 야곱의 몫을 챙겨 주셨을 겁니다. 야곱이 고향 땅을 떠나올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것 기억하시죠?”
“예,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맞습니다. 너를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동안 지켜줄 것이고, 그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지요.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하나님이 당연히 지키시지요. 그런데 사람이 그걸 기다리질 못합니다. 백방으로 방법을 찾고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가만히 앉아서는 그냥 당하게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주 이상한 요구를 하시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다가 모세를 통해 해방되어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 사면초가가 되었거든요. 앞에는 홍해, 뒤에는 다시 잡아 노예로 삼으려는 이집트 군대가 쫓아왔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애굽기 14:13) 오히려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너희를 어떻게 구원하는지 보라는 겁니다. 우리도 사는 게 답답하니까 이리저리 방법을 찾고 뭐라도 해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나를 구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아무도 나를 구원해 주지 않는다는 단정이 깔려 있는 겁니다.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하나님이 날 구원하시죠.”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평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평소에는 성실하게 우리의 일상을 살아야죠.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되었을 때 구원자 예수님을 의지해야 된다는 겁니다.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의 극치가 언제일까요?”
“죽을 때요.”
“맞습니다. 죽을 때 정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꼭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

“얼룩양과 점박이 양이 점점 불어나서 야곱이 부자가 되면 외삼촌 라반의 기분이 어떨까요?”
“안좋을 것 같은데요.”
“참 나쁜 심보입니다. 자기가 일을 시키고, 품삯을 가능성 떨어지는 것으로 정하고, 가능성을 배제하는 조치까지 했으면서도 자기 눈 앞에 벌어지는 일을 보면 ‘내가 잘못했구나.’라고 뉘우쳐야 될 것 같은데, 그건 도덕책에나 나오는 이야기이고 현실은 배가 아픕니다. 라반의 아들들, 그러니까 야곱의 사촌형제들이 라반에게 ‘야곱이 아버지의 것을 빼앗아 부자가 되었습니다.’라는 식으로 말한 겁니다. 야곱이 라반의 것을 도둑질 한 게 있습니까?”
“아니요.”
“흰색이나 베이지색 양이 있다면 도둑질 한 것이죠. 야곱은 품삯으로 하겠다는 얼룩양과 점박이 양만 데리고 있을 뿐인데, 빼앗았다는 건 정말 어이없는 모함입니다. 그런데 욕심에 눈이 어두운 라반과 그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야곱에게 빼앗겼다는 기정 사실로 여기게 됐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야곱이 몰랐을까요?”
“당연히 알았겠죠.”
“물론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에는 야곱이 그냥 돌아가고자 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야곱에게 돌아가라고,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이런 사정과 계획을 아내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아내들도 자기 아버지의 행태를 알고 있었을테니 불만이 많았을 겁니다. 아내들은 단번에 야곱의 계획에 찬성했습니다. 라반에게 작별인사를 해봐야 고이 보내줄 것 같지도 않으니 야곱과 그의 가족은 마침 라반이 양털을 베러 멀리 떨어져 있는 틈을 타서 고향 땅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때 야곱의 아내 중 동생인 라헬은 아버지가 섬기는 작은 우상을 훔쳐왔습니다.”
“우상을 왜 훔쳤나요?”
“그러게 말입니다. 나중에 이게 또 라반이 시비를 거는 빌미가 됩니다. 라반이 데라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긴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교회에 다닌다고는 하지만 온전히 하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세상의 의식과 방법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욕심쟁이 라반은 나이롱 신자의 전형이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우상도 믿었다고요?”
“그러네요. 집안에 작은 우상을 두고 섬기고 있었으니까요.”
“하나만 제대로 믿지. 참 희한하네요.”
“인간이 하나님만 믿어야 하는데 사실 인간이 하나님만 온전히 못믿습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뭔가 불안해서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도 믿으려고 합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가나안 토속신인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섬기는 바람에 하나님이 계속 ‘나만 섬겨라, 나만 섬겨라’ 하셨습니다. 지금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자유롭지는 못할 겁니다. 사람이 얼마나 연약하고 불안한 존재인지 알 수 있는 거죠. 이런데 남보다 조금 학력 높으면 잘난 체하고, 남보다 조금 돈 많으면 잘난 체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시면 어떨까요?”
“도토리 키재기 같겠네요.”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싹이 노란 그 도토리들 구원하겠다고 예수님을 보내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