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나 기독교나 결국 똑같은 것 아닙니까? 다만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이 다른 것 아닌가요?”
“아닌데요.”
“뭐가 다른가요?”
“석가모니는 부귀와 향락을 누릴 수 있는 자리를 버리고 고난의 길을 택하고 수행을 했으니 분명 인간적으로는 대단하게 여기고 존경할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인류가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추앙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석가모니는 자신이 신이라고 한 적도 없고, 자신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불교는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통해서 윤회를 벗어나는 해탈을 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일 겁니다. 윤회는 아시지요?”
“예. 잘 살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고, 못 살면 짐승으로 태어나는 거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아주 못 살면 지렁이나 버러지로도 태어날 수도 있고요. 그런데 보통 사람이 해탈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역사 속에서 해탈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글쎄요, 모르겠네요. 거의 없지 않습니까?”
“저도 그 부분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곧 내가 하나님이다, 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나를 믿는 것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구원자를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 겁니다. 선생님이 수행을 해서 해탈하는 게 쉬울까요,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 받는 게 쉬울까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게 쉽겠네요.”
“그냥 쉬운 정도가 아니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쉽습니다. 너무 쉬워서 사람들이 잘 믿지 않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구원 받게 하셨냐면 아주 옛날 문자도 모르고 미신에 매인 사람들에서부터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예수님의 이름만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요엘 2:32; 사도행전 2:21; 로마서 10:13) 저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도 좋아하고 그대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말 그대로 일단 ‘예수님’,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엄마’, ‘아빠’ 잖습니까?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다는 거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시죠?”
“아버지라고 하지요.”
“그런 의미입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 예수님이 없으면 안된다는 거죠.”
“마음에 확신은 없지만 그렇게 한번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