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걸었습니다

토요일 밤, 목사들에게는 어쩌면 주일보다 더 긴장하고 있는 시간이다.
주일을 준비하느라, 주일 돌아가는 일 챙기느라, 설교 원고 다듬느라 바짝 긴장하고 집중한다.
가족들에게도 좀 조용히 해달라고 종종 요청하기도 한다.

기존의 교회를 사임한 나이지만 토요일 저녁은 여전히 설교 원고를 다듬는다.
영상 촬영도 해야 하고, 가족끼리 하는 예배를 인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요일 밤에 전화가 왔다.
대부분의 성도는 목사가 토요일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기에 거의 전화하지 않는다.
‘누굴까, 이 밤에 무슨 일일까?’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약간 꼬인 발음으로 “여보세요” 한다.
누군지 알 것 같다.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그럼요. 알죠”
“술 한 잔 마셨는데, 목사님 생각이 나서요”
“이야, 술을 마시고 저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제가 마귀에게 빠져서 자꾸 술을 마시는데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마귀에게 빠져서 술을 드시는 게 아니죠. 답답한 것은 있는데 마음이 여려서 잘 드러내지 못하니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속을 좀 드러내고 싶어서 그러신거죠. 아마 맨정신이면 저에게 전화도 못하셨을거잖아요”
“예, 못했겠지요. 제가 마음이 좀 여립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세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하하, 아니요. 술을 마시니까 목사님 생각이 나서 그냥 걸었습니다”
세상에 그냥 거는 전화가 어디 있나.
그 마음이 느껴졌다.

“목사님, 따뜻합니다”
“뭐가요?”
“목사님 음성이요”
“제 음성을 그렇게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도 내 것 돌보며 사역하세요. 다음에 또 전화하겠습니다”

누군가 술을 마셨을 때 생각난 사람이 나인 것이 참 감사하다.
그냥 전화를 걸고 싶고 음성을 듣고 싶은 사람이 나인 것이 감사하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삶의 무게가 힘겨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린다.
목사의 음성으로라도 힘을 얻어 이 밤을 잘 보냈으면 한다.

이 밤이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