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그룹3] “용서한다고 하고선 왜 벌을 줍니까?”

“하나님이 벌을 주기도 합니까?”
“예. 죄를 범한 것에 대해 벌을 주시지요.”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신다면서요?”
“예, 회개하면 용서하시지요.”
“하나님은 용서한다고 하고선 왜 벌을 줍니까? 그러면 용서한 게 아니잖습니까?”
“충분히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세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건 용서, 화해, 죄책입니다. 용서는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은혜로 행하시는 일방적 행위입니다. 화해는 하나님의 용서를 깨닫게 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죄를 지었는데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회개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용납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죄인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열어주시는 것이 용서입니다. 하지만 죄에 대한 책임은 있습니다. 사람들이 기독교의 회개에 대해 오해하는 것인데요. 하나님께 회개만 하면 죄가 없어지니까 기독교인이 오히려 대담하게 죄를 지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겁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를 해서 하나님께 용서 받고 관계는 회복되지만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살인, 사기, 절도같이 국법을 어기는 죄라면 당연히 국가를 통해 처벌을 받습니다. 이 경우에는 무슨 죄로 언제, 어떻게 처벌을 받는지 자신과 타인이 알게 되죠. 국법으로 처벌 받지 않는 미움, 시기, 이간질같은 죄도 처벌을 받습니다. 원래 교회 안에서 그런 일이 범해졌을 때 교회가 공적으로 처벌을 결정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교회가 잡음이 나는 걸 꺼려해서 그런 역할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고, 사람들이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교회의 지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으려는 것도 있어 그런 예를 거의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고 벌하십니다. 하나님은 벌을 받는 사람이 깨닫고 돌이키고 교회가 정화되길 원하시지만 바로 처벌을 받지도 않고 언제 어떻게 처벌을 받는지도 공표되지 않으니 사람들이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겸비한 사람이나 순결함을 원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처벌을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신다고 해서 기독교인이 죄를 가볍게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시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셨는지 안다면 죄를 멀리해야 마땅합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네요.”
“예, 맞습니다. 방금 제가 말씀드린 건 거의 하나님과 개인의 문제이고, 이것이 타인과의 관계와 사회나 국가로 확장되면 엄청 어려워집니다. 성경에는 용서도 나오고 처벌도 나옵니다. 어디까지 용서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처벌하고 보복해서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지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부분을 다루는 학문을 ‘기독교 윤리학’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학문 중에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