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저서 ‘대화로 푸는 성경’의 주인공들과 주기도문 공부를 시작했다.
그들에게 기도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오늘부터 기독교의 기도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주기도문’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예. ‘하늘에 계신…’이라는 거요?”
“들어보셨네요.”
“아주 어릴 때 교회 가서 배운 적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읽을 때 띄어 읽기를 잘해야 합니다. 의미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처음엔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으나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ㅎㅎㅎㅎ”
“이해하셨군요. 부산 사람들만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서울 사람들은 이런 걸 모르나요?”
“예, 전혀요. 상상도 못하고, 설명해 줘도 모릅니다.”
부산 사투리로 ‘주기도’는 ‘죽여달라’는 의미의 ‘죽이도’를 소리나는대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아침 일찍부터 카페에서 일하고 점심식사를 떼우다시피하고 부랴부랴 달려와 피곤한 사람이 있어 한번 웃으며 느슨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고, 또한 내가 20년 이상 수도권에서 살다가 왔지만 그래도 부산 정서를 이해한다는 공감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모든 종교에 있습니다. 심지어 미신에도 있지요. 오히려 미신의 기도가 훨씬 더 정성을 들이는 면이 있습니다. 그건 아시요?”
“예, 목욕재개하고, 새벽에 기도하고…”
“치성을 드린다고 하지요. 기독교는 새벽 5시에 새벽기도를 하는데, 거기는 4시부터 하기도 하고, 3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정성을 들이는 면에서는 어쩌면 따라갈 수 없습니다.”
“당할 수가 없지요.”
“그렇다면 기도의 핵심은 인간의 정성이 아닌 겁니다. 기도는 인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와 소통하는 도구인데, 이 기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기도의 대상이겠네요.”
“맞습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누구에게 기도하느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