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32) 38:1-10

“오늘은 창세기 38장을 보게 되는데요. 미리 말씀드릴 것은 창세기 38장은 37장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37장에서는 족장인 야곱이 아끼는 아내인 라헬의 장남 요셉이 질투하는 형들에 의해 이집트에 팔려갔다고 했는데, 그 뒷 이야기는 38장이 아니라 39장에 이어집니다.”
“그럼 38장은 무슨 내용인가요?”
“목사인 제가 보기에도 ‘이런 내용을 굳이 성경에 담을 필요가 있었을까? 성경이 인류의 고전으로서 기독교인만 보는 책이 아닌 점을 고려해서라도 차라리 빼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내용입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데 그러세요?”
“조금 충격을 받으실 수도 있어서 예방주사같이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솔직히 비신자로서 성경을 처음 배우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 내용을 건너뛸까 고민도 했습니다만 그건 아닌 것 같아서 함께 보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까 더 궁금해지는데요?”

“38장에는 요셉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습니다. 38장에는 ‘유다’라는 사람에 대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켜 보통 뭐라고 부르지요?”
“유대인요?”
“맞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스라엘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주 오랜 옛날부터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러네요.”
“그 이유가 되는 사람이 바로 오늘 나오는 ‘유다’라는 사람입니다. 왜 ‘이스라엘인’이라고 하지 않고 ‘유대인’이라고 하게 되었는지 이제 성경에 슬슬 그 이유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야곱이 아내가 몇 명이라고 했지요?”
“두 명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맞습니다. 첩도 두 명 있었습니다.”
“그럼 네 명인 거네요.”
“그런 셈이죠.”
“성경에서 믿음이 좋다는 사람이 아내가 네 명이라니 좀 별로네요.”
“그러게요. 그래서 야곱은 평생 고생을 했지요.”
“하하, 맞네요.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둔 거지요.”
“믿음이 좋다고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란 말은 아닙니다. 여전히 인간적으로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내용이죠. 유다는 야곱의 첫째 아내의 아들입니다. 야곱이 어느 아내를 사랑했다고 했지요?”
“둘째요.”
“맞습니다. 자매 중 둘째이기도 하고 두 번째로 결혼한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유다는 야곱이 별로 원하지 않았던 여자였지만 외삼촌의 속임수로 먼저 결혼하게된 레아의 넷째 아들입니다. 이 유다에 대한 일화가 나오는데 이 사건은 언제 일어났는지 확실치 않습니다. 38장에 나오지만 37장의 요셉을 노예로 판 사건 이후에 일어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야곱과 그의 가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유다가 자기 가족을 떠나 ‘아둘람’이란 지역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그 지역 여인과 잠자리를 해서 엘과 오난이라는 두 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식으로 결혼한 게 아니고요?”
“예, 정식으로 결혼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왜 부담스러워했는지 알 것 같네요.”
“이 정도는 부담스러운 내용이 아닙니다.”
“더 큰 게 있는 건가요?”
“어마어마한 게 있습니다.”
“정말 큰 사건이 아니라 이런 식의 내용인가요?”
“예, 아주 충격적인… 그런데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니까요.”
“얼마나 충격적인지 들어보죠.”

“장남 엘이 성장해서 며느리 감을 데려왔는데 이름이 ‘다말’이라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해서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다고 했습니다. 벌을 내리신 거죠.”
“어떻게요?”
“구체적인 내용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벌을 내리셨다고 하면 벼락을 맞아 죽든지 해서 하나님이 개입한 것으로 확증할 수 있는 증거를 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병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성경은 엘이 죽은 이유가 그의 죄를 하나님이 심판하셨다고 말합니다. 고대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에 형수와 결혼해서 대를 잇는다는 ‘형사취수(兄死娶嫂)’ 원칙이 있었던 것 아시죠?”
“예.”
“이 원칙은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로 유목사회에 많았고,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 오난이 원칙대로 형수와 결혼을 했는데, 아들을 낳더라도 그 아들은 자기 아들이 아닌 장남인 형의 혈통을 잇는 아들이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형수인 다말과 성관계를 하면서 바닥에 사정을 했습니다.”
듣는 분들의 표정이 좀 일그러졌다.
“성경에 이런 이야기까지 나오나요?”
“예, 정말 적나라하죠? 혹시 ‘오나니즘(onanism)’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들어본 것도 같고…”
“오나니즘은 ‘자위행위’라는 뜻입니다. 바로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이 한 행위에서 나온 말입니다. 당시 남편을 잃은 여인은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자식이 있어야 집안의 일원으로서 재산도 유지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사회는 형사취수원칙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난이 그걸 거부했던 것이죠. 그 마음과 저지른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해서 하나님이 그도 죽였습니다.”
“성경에 정말 별별 내용들이 나오네요.”
같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보았던 표정 중 가장 좋지 않은 표정을 봤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닙니다.”
“더 심한 게 나오나요?”
“예,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