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울타리에 두번째로 함께하게 된 부부가 있다.
물론 낮은울타리에 20대와 30대 청년도 있지만 부부가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 중엔 가장 젊어(그래도 40대 후반이다) 나름 젊은 에너지를 제공한다.
낮은울타리 식구가 적다 보니 자칫 처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참 귀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두 주쯤 전에 그 가정에서 의논을 요청했다.
그 가정의 어르신이 연세가 많고 병환이 있으신데, 갑자기 같은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자고 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어르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답했다.
현재 세 가정이 나오는데 그중 한 가정이 빠지는 것이 얼마나 허전하고 큰일인가.
분명히 다른 가정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낮은울타리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낮은울타리 안으로만 사람을 모으는 일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복음을 전하고 낮은울타리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형편에 맞는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하고 추천하고 격려하기로 했다.
그런 다짐을 한 것이 대견하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 상황이 닥치자 안타까왔다.
‘그런 다짐을 하지 말 걸 그랬나?’라는 후회도 됐다.
그러나 ‘낮은울타리’는 나의 영업장이 아니다.
처음 복음을 듣기 위해 잠시 깃들일 수도 있는, 교회 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에게 잠시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주는, 그런데 그 일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예수님의 공동체가 되길 원한다.
두 분이 낮은울타리에 오실 때부터 두 분과 어르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
함께 예배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고 해서 이름을 빼지 않는다.
입에 붙어 기도할 때 절로 나오는 이름을 어찌하랴.
그래서 내 기도 명단은 계속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보이신지 두 주가 됐다.
엄청 허전하다.
어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전화를 걸었다.
어르신의 이름까지 부르며 계속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이름까지 부르며 기도해 주는 분은 목사님 뿐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계속 소식을 주고 받자고 했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