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그룹2] “하나님이 존재합니까?”(1)

비신자 그룹과 이진오 목사님이 쓴 ‘초대’라는 책으로 공부 중이다.
그중 ‘하나님’에 대한 장을 마치는데 마지막에 이 질문이 있다.
‘하나님이 존재합니까?’
나는 이 질문을 했다.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했는데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설명을 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정도는 설명을 했습니다. 이제 이 장을 마치는데 이 질문이 있네요.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세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 중 언니가 나를 보기도 하고 내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다시 내 눈을 봤다.
표정과 눈빛에서 내 기분을 맞추기 위해 답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나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이미 답을 들은 듯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이 안믿어집니다.”
“솔직히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난 이 질문을 여러 비신자들로부터 수 차례나 들었다.
하지만 적응되지 않는다.
들을 때마다 늘 아프고 답답하다.

이분의 삶에 대해 에피소드를 통해 대충 알고 있다.
사 남매 중 첫째로 동생들을 먼저 챙기고, 결혼해서도 늘 남편과 자녀들을 우선했다.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거나 실직했을 때 생계를 위해 중노년 여인네가 할 수 있는 몸 쓰는 일을 했고, 지금도 하는 중이다.
남들에게 피해주며 산 적이 없고, 농담 삼아 “돈 10억이 생기면 뭐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돈에 쪼달리며 살지 않으면 좋겠고, 나머지는 어려운 사람들 도우며 살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도덕은 알고 예의를 지키며 산다.
그러나 사회에서 권력자들이나 악한 사람들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약한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에 대한 의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분을 좋게 생각한다.
칠십이 되어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이제 신경을 끈 채 자기 몸 하나 챙기려 하지 않고 여전히 옳고 그른 것을 생각하려는 마음가짐이 멋지다.

이 때 기독교인들이 말을 잘해야 한다.
성경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가 이렇게 많다는 둥의 말로 논박하려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건 내 쓴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게요. 하나님이 왜 이러시는지 저도 답답합니다. 저같은 목사가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했으면 적당한 때에 하나님이 ‘짠’하고 나타나주시든지 나쁜 놈이 천벌 받는 걸 보여주시든지 하면 좋은데 오히려 착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생기니까요. 그러면 목사도 더 신나서 전도할 맛이 날텐데 말입니다.”
“목사님도 하나님이 답답하다고요? ㅎㅎㅎ”
서로의 눈과 입을 똑바로 쳐다보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공감만 남았다.

“그런데 성경에 우리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하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시로 쓰여진 구절입니다.”

시편 73편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10   그러므로 그의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는도다
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중략)
16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20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하략)

“성경에도 이런 내용이 있네요.”
“예, 세상 돌아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니까요. 그때도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왜 세상에 이런 일들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나쁜 놈들은 아프지도 않고, 오래 살고, 돈은 너무 잘 벌고, 이웃과 나누지도 않고, 자식도 대를 이어 떵떵거리고 사는 걸 보면 정의가 사라진 것 같고 하나님은 나약한 사람들의 의식에나 존재하는 것 같죠. 그런데 이 시는 그때 당시 성가대원이 지은 시입니다. 성가대가 예배시간에 찬양하던 내용이란 말입니다.”
“예배시간에 이걸 불렀다고요?”
“예, 몇 년 살지 못하는 우리가 보기에는 성공하는 것 같고 잘되는 것 같은데 결국 영원하신 하나님은 나쁜 놈들을 파멸시킨다는 겁니다. 성경에는 소위 ‘최후의 심판’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건 확실하다고 성경 여러 곳에 나와 있습니다. 이 시는 현재는 속상하고 내 생전에는 그런 심판을 보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때를 기다리겠다고 찬송한 겁니다. 그걸 기다리는 게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이걸 믿는 겁니다. 저도 눈에 보이는 건 없지만 그 ‘믿음’이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거죠. 하나님이 눈에 보이고 잘못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벼락이 내리면 누가 하나님을 안믿겠습니까? 없는 것처럼 보이고 의심스러운 상황이 더 많지만 믿는 것이 진짜 믿음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