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까지 가서 설교한 사연(2)

단상에 올라가 내 소개를 한 후, 설교로서 나의 첫 마디는 “왜 전도하려고 하십니까?”였다.
교회가 몸살을 앓았던 문제가 일단락되고 이제 전도를 잘한다는 강사를 불러 어떻게 전도할 것인가를 듣기 위해 앉아있던 청중은 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를 말해주길 기대했는데 도리어 ‘왜?’를 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회의 예전 영광을 회복하고 싶으셔서 그렇습니까? 빈 자리에 사람들 데려다 채우고 싶어서 그렇습니까? 그건 전도(傳道)가 아니라 전교회(傳敎會)지요. 그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홍보이고 영업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설교는 우리가 받은 구원과 복음의 탁월함을 상기하는 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이런 구원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도’라고 했다.
여기까지 전하고 나니 설교를 마칠 시간이 되었다.

감사한 것은 점심 식사 후 졸음이 올만한 시간인데도 평균 연령 70세에 가까운 분들이 정말 한 명도 조는 사람 없이 설교를 집중해서 들은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서 “제가 부산에서 6시간 운전해서 왔습니다. 또 6시간 운전해서 가야합니다. 어렵게 왔으니 좀 길게 하겠습니다.”라며 양해를 구했다.
그때부터 전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전했다.
그중 ‘새가족을 위해 지정석을 없애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모두가 웃었다.
예배는 총 2시간이 걸렸다.
마칠 때까지 단 한 명도 졸지 않고 집중해서 참 감사했다.

예배 후 참석한 성도들과 인사를 나눴다.
연세드신 분들이 싱긋이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그중 올해 98세라고 말씀해주신 분도 있었다.
“목사님,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오늘 정말 은혜로왔습니다.”

그중 한 권사님이 끝까지 남아 굳이 밥을 사시겠다고 했다.
교회에서 가까운 식당에 교역자들과 같이 걸어가서 비빔밥을 먹었다.
담임목사와 다른 교역자들이 마치 형제처럼 대화하며 마치 집밥을 먹듯 편안하게 먹는 모습을 보며 평소 교역자간의 관계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 먹고 헤어질 때, 담임목사님이 그 권사님을 댁까지 함께 걸어서 모셔다드리겠다며 거기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나는 담임목사님이 마치 아들처럼, 막내동생처럼 권사님 곁에서 함께 걷는 그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
담임목사님은 잠깐의 대화중에 지금 자신의 목회가 행복하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보였다.

전도는 사람을 모으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받은 구원을 나누는 것이다.
구원 받은 삶의 특징은 사랑이다.
교회를 키우려는 욕심이나 사람을 모으려는 욕심을 거룩한 ‘전도’로 포장한 예가 얼마나 많은가.
전도를 하더라도 예수님이 찾아다니셨던 사회적 약자보다는 교회의 일꾼이 될만한 사람을 찾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 없는 참 전도가 많은 세상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젊은 일꾼과 세련미는 없지만 담임목사님과 교역자들, 그리고 담임목사님과 성도간의 관계를 볼 때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운전해서 돌아오면서 ‘피곤하긴 하지만 멀리 운전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면 나이는 정말 숫자일 뿐이다.
내가 이분들의 가슴에 우리에게 임한 구원과 사랑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핸들을 잡은 손이 시릴 정도로 서울 날씨가 추웠지만 가슴은 뿌듯하고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