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초되기 거부하기

왕초가 되어 뭐든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아담의 후손의 자연스런 본성일지 모른다.
나도 아담의 후손인지라 그 본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만 33세에 담임이 된 이후 일종의 안전장치로 내 주변에 나이 많은 사람이 있게 했고 주기적으로 만났다.
내겐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그렇게 하지말고 이렇게 해봅시다.“라고 다른 의견을 제시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교회의 장로님들이 그랬고, 안양목회포럼의 목사님들이 그랬다.
심지어 내 목회 방향을 실천해줄 교역자도 나와 다른 스타일의 사람들을 뽑기도 했다.

부산에 내려와서 ‘낮은울타리’라는 독특한 사역을 하니 일단 장로와 교역자가 없다.
그래서 난 내 주변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일부러 만나려고 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인생을 배우고 다른 시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참 좋은 어른을 만났다.
감사하게도 내게 먼저 다가와주셨다.
만날수록 깊고 넓음에 감동이 된다.

어제 5월중 한번 뵙기를 청했더니 오늘 시간이 좋다고 하셔서 뵙고 왔다.
어제까지 연휴동안 에너지 넘치는 손주들과 놀아주시고 쉬셔야 할텐데 시간을 내주신 것이다.
어쩌다 잠깐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 압니까?”
“예.“
헨리 나우웬이 우연히 본 그 그림에 감동을 받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를 찾아 원작을 하루종일 본 후 ’탕자의 귀향‘이란 책을 쓰고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본인도 20여 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직접 방문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직접 주문해서 만든 액자라며 그 그림 액자를 해설편지와 함께 선물로 주셨다.

탕자도 결국 왕초가 되고 싶어 무리수를 두었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왕초의 삶을 살다가 망한 사람이 아니던가.
아직 내 주변에 조금은 어렵게 만날 사람이 있다는 건 인간관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존경하고 찾아뵙고 싶은 어른이 계시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동안 밥도 여러 번 사주셨는데 오늘은 거의 백반 수준의 밥이라서 내가 냉큼 계산했다.
내가 계산하는 걸 말리시지 않아 참 감사했다.
다음엔 좀 더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