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결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70세 가까운 불교 신자와 그를 전도하려고 나와의 만남을 주선한 친구를 함께 만났다.
나는 기독교나 성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느냐고 물었다.
잠깐 멈칫하더니 전혀 없다고 했다.
보통은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그동안 적당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묻지 못했거나, 하다못해 교회의 불편한 점을 비판하는 내용이라도 말하는데, 전혀 말하고 싶은 내용이 없다하니 좀 난감했다.

1년에 절에 몇 번이나 가냐고 물었다.
평균 10번 이상은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석가모니, 부처,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윤회 등 불교에 관해 내가 아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는 중 이 사람이 불교가 기복주의적 색깔을 띠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는 걸 알게 됐다.
이 말은 종교에 대해 그 본질을 제대로 알고 행하기 원하는 이성적인 사람이란 것이다.

나는 기독교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죄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역할이 무엇인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복음이라고 하는지 전했다.
그분은 담담히 듣고 있었다.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혹시 불편했는지 내 이야기를 들은 소감을 물었다.
“기독교가 무엇을 믿는 건지 궁금하기는 했는데 오늘 쉽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긍이 되었습니다.”

친구의 긍정적인 반응에 만남을 주선한 사람의 눈빛을 보니 내가 좀 더 강하게 끌어당겨 주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저는 선생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칠십 가까운 인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오늘 저와 한 시간 반쯤 만나며 들은 이야기가 수긍된다고 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물론 이 자리에서 기독교 신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만 그런 일은 드문 경우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간증을 하기도 하기죠. 이 일은 인생 전체가 걸린 중요한 문제인데 한 번의 만남 후에 바로 결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 중에 제가 느낀 것은 선생님은 이성적인 분이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시간을 두고 고민하시며 천천히 결정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신 친구 분을 만나는 겸 1년에 두 번만 교회에 와주시면 좋겠습니다. 부활절과 성탄절 들어보셨죠?”
“예.”
“친구의 성의를 생각해서 그 때만 교회에서 만나주십시오. 그러실 수는 있죠?”
“예.”
“제가 만났던 비신자 분들의 경우를 보니 교회에 매주 나가야 된다는 것과 헌금을 내는 걸 아주 부담스러워하시더군요.”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시더라도 매주 교회에 나와야 된다는 마음을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가족분들도 독실한 불교 신자이실텐데, 아마 일요일마다 교회에 간다고 하면 엄청 싫어하실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가정의 화목이 망가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냥 기독교 신앙만 가지고 안나오셔도 됩니다. 다만 가끔 친구 만나러 나오시기 바랍니다. 헌금도 부담갖지 마십시오. 성경에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돈을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되나요?”
“기독교는 매주 주일에 교회에 다니고 헌금 내는 것을 핵심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부산에 와서 개종을 하고도 교회에 나갈 수 없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오늘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