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맡겨라”

2021년 7월부터 비신자 여성들 모임을 했다.
예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분들인데 우연한 기회로 정기적 모임까지 하게 됐다.
비신자를 지향한다고 했지만 앞이 보이지 않던 내게는 홍해의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분들도 나같은 목사를 만난 것이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11개월간 그분들의 관심과 질문에 따라 기독교 개관을 하기도 하고, 성경 본문을 보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그분들이 흥미롭게 들어주셨고, 마음을 연 대화를 주고 받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성경의 주요 사건들 중심으로 성경을 직접 읽으며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좋다고 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부터 시작해서 25장 야곱과 에서의 소위 팥죽 사건까지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모임하던 분들의 집안 사정들이 생겨 모임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 이게 뭡니까?”라는 식으로 기도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주일쯤 기도하다가 하나님과 마음 속 대화가 시작됐다.
“그 사람들 원래 네가 알던 사람이었냐?”
“아니요”
“네가 주도해서 모임을 만들었냐?”
“아니요”
“그런데 네가 왜 그렇게 아까워하고 답답해 하냐?”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요”
“네가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냐?”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없습니다. 그래도 갑자기 이렇게 흐지부지되는 건 아쉽습니다”
“왜 흐지부지될 거라고 생각하니?”
“모임을 하지 못할 상황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면 내가 그들을 포기한 거냐?”
“그건 아니지만…”
“이게 네 일이냐?”
“아닙니다”
“네 일처럼 여기고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내가 너를 만날 때 한 번에 한 방법으로만 만나고 끝냈니?”
“아니요”
“오래 걸렸고, 지금도 진행 중이죠”
“그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내게 맡겨라”
“예, 그러니 제 마음이 편하네요”
“나는 네가 편하고 즐겁게 이 일을 하면 좋겠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자꾸 교회 관리하던 버릇이 나옵니다”
“네가 낮은울타리 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러게 말입니다”
“너는 잃어 버린 양을 찾으러 간다고 하지 않았냐?”
“예”
“그러면 낮은울타리를 만들고 들어오도록 기다리거나 들어오기를 바라면 안되는 것 아니냐?”
“맞습니다”
“나는 잃어 버린 양을 찾기 위해 창녀도 만나고 세리도 만났다. 그래서 모함도 받고 비난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네가 말하듯 한 영혼이 온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내 사람을 내가 찾고 내가 만나고 내가 빚어갈 것이다. 너는 나를 믿어라”
“예, 하나님이 하시는 걸 보면서도 제가 자꾸 계획을 짜고, 앞서 나가려 했고, 제가 잘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습니다. 교만한 저를 용서해 주시고, 겸손히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함께 기뻐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