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그 땅에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을까요?”
“아니요.”
“아니, 어떻게 아세요?”
“세상에는 그런 삶이 없지요. 이제까지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하하, 득도하셨습니다. 하나의 파도가 지나가면 다른 파도가 오는 것이 인생이지요. 그 땅의 주인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객이 와서 자기들보다 잘 먹고 잘 사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안좋죠.”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텃세를 부리겠죠.”
“맞습니다. 성경에 보면 시기해서 이삭이 주로 사용하는 우물을 메워버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보호해 주는 것 같았던 왕 아비멜렉이 자기들을 떠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땅에 있으라고 해서 순종했는데, 이제는 떠밀려 나가야 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이삭의 마음이 어떨까요?”
“안좋을 것 같아요.”
“하나님은 이럴 때 왜 도와주시지 않고 내버려 두실까요?”
“그러게 말이예요. 좀 답답하네요.”
“일단 좀더 내용을 보겠습니다. 이삭은 종들을 시켜 새 우물을 파도록 했습니다. 그 지역이 물이 귀했으니 바로 옆에 파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법 멀리 떨어진 곳에 우물을 팠을 겁니다. 제가 이 지역을 방문해서 우물을 본 적이 있는데요. 10미터 정도 땅을 파면 물이 나오는 게 아닙니다. 사고 방지를 위해 철망으로 막아 놓은 우물을 내려다 봤는데 너무 깊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당시에도 그렇게 깊은 우물을 팔 수 있었나요?”
“지금처럼 콘크리트가 아니라 파고 내려간 만큼 마치 제주도 돌담처럼 돌로 지지되도록 만들며 내려갔겠지요. 도르래를 사용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 수고를 해서 우물을 얻었는데 물이 나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냉큼 와서 빼앗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삭은 저항하지 않고 또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오지 않을 정도로 더 사막 가까이 갔다는 뜻이겠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렇게 두 번이나 우물을 빼앗더니 세 번째는 빼앗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우물 이름을 ‘넓다’라고 지었다고 하는데요. 왜 ‘넓다’고 지었을까요?”
“땅이 넓었나 보죠.”
“아… 그렇죠. 정답입니다. 하하. 땅이 넓었습니다. 왜 땅이 넓었냐면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라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굳이 빼앗고 싶지 않을 정도로 사막 가까이 내려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삭이 우물을 파는 족족 빼앗길 때 하나님은 왜 지켜주지 않으셨을까요?”
“그러게 말이예요. 안그래도 질문하려고 했어요.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 주셔야죠.”
“그 점이 사람으로서는 답답한 부분이지만, 또 사람과 하나님이 다른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때 도와주시면 하나님을 잘 믿게 될 수도 있다는 걸 하나님이 아실까요, 모르실까요?”
“아시겠죠.”
“아니요. 그렇다고 하나님을 잘 믿게 된다면 아마 하나님이 벼락을 내려서라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우물 곁으로 오는 걸 막으셨겠지요. 사람은 초자연적인 도움을 얻으면 잘 믿을 것 같지만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은 사람이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십니다. 진짜 믿음은 캥거루 엄마처럼 감싸고 보호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아시는 거죠.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이 다 끝나고 이삭이 옛날 아브라함이 있던 ‘브엘세바’란 곳으로 다시 갔습니다. ‘브엘세바’의 뜻이 뭔지 기억하세요?”
“우물…”
“예, ‘브엘’이 ‘우물’이란 뜻이지요. ‘무슨 우물’입니다. ‘무슨 우물’일까요?”
“생명의 우물?”
“아브라함때 팔레스타인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과 서로 침략하지 말자고 맹세를 한 적이 있지요? 그건 기억하세요?”
“예, 바로 ‘맹세의 우물’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너에게 복을 주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있으라고 한 그 땅에서 그런 설움을 당하면서도 참고 그 땅을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을 하나님은 보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뜻이 있었군요.”
“지금 가정에서 겪고 계신 일들 중에 ‘하나님이 좀 도와주시면 좋겠다’라는 것들이 있지요?”
“예.”
“그래서 어떻게 하세요?”
“가끔씩 ‘하나님, 도와주세요.’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던가요?”
“아니요.”
“다 아시는 하나님이 왜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그러게 말이예요. 남은 속이 타는데.”
“진정한 믿음이 생기길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실은 하나님 속이 더 타고 있어요. 하나님은 도울 능력이 있으신데도 우리의 믿음을 위해 참고 기다리셔야 하니까요.”
“참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그러게요, 실은 저도 그런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