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8)27:5-29

“만약 족장인 아버지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정식으로 잔치를 열어달라고 해야죠.”
“우와, 연식이 나오는 어휘입니다. ‘잔치’ ㅎㅎ”
“어머, 그러네요 ㅎㅎ”
“맞습니다. 아버지가 족장으로서 처신이 바르지 않으면 장차 족장이 되길 원하는 장남이라도 바로 하면 좋은데, 이 이야기를 들은 장남은 기분이 좋아 ‘아싸~’하며 사냥도구를 들고 나갔습니다. 문제는 부자간의 이런 대화를 아내가 들은 겁니다. 이 내용을 이삭이 아내와 의논을 했을까요 하지 않았을까요?”
“안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아세요?”
“느낌이 그렇잖아요.”
“3천 년이 지나 글로 읽는 우리도 느낌을 아는데, 이삭은 느낌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내와 의논도 하지 않고, 공식적인 무언가를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의 문제가 깊어지게 된 이유지요.”
“가장이 잘해야 돼요.”
“맞습니다. 가장이 잘 해야지요. 그런데 왜 저를 보세요?”
“그냥 보는 건데요. 찔리시는 게 있는가 보네요.”
“찔리는 게 있습니다. 제가 잘하겠습니다. 그런데 지혜로운 아내라면 모르는 척하고 눈이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가서 ‘여보, 당신 건강이 좋지 않은데, 혹시 후계에 대해 생각하는 게 있어요?’라고 물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신자로서 이 모임을 소개한 분이 대답했다.
“그러네요. 이 부분을 읽기도 하고, 설교로도 들었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가정은 누구 한 사람이 잘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애써야 합니다. 어느 공동체든 마찬가지지요. 교회도 그렇고요.”

“아내 리브가는 차남 야곱에게 사태의 전말을 알립니다. 그리고 작전을 짭니다. 아내가 남편의 입맛을 알까요, 모를까요?”
“당연히 알겠죠.”
“7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남편의 입맛을 아는 아내가 별미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차남에게 새끼 염소 두 마리를 잡아서 오라고 시킵니다. 그리고 장남이 오기 전에 먼저 음식을 들고 아버지에게로 가서 먹게 하고 축복을 받으라는 겁니다. 아버지는 장남과 한 편이 되고, 어머니는 차남과 한 편이 되어 후계를 놓고 서로 모르게 음모를 꾸밉니다. 이게 한 집안에서 일어날 일입니까?”
“완전 막장 드라마네요. 좀 충격이네요.”
“어떤 면이요?”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면 아주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보통 사람들보다는 좀 모범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건 보통 사람들보다 더 못한데요.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나와도 되나요?”
“잘 보셨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마치 사극에서 보던 궁궐의 암투같습니다. 전혀 모범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성경의 인물이 대단해서 이대로 살라고 교훈하는 책도 아니고, 성경의 인물이 대단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게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사람 아니, 오히려 보통 이하의 언행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는 걸 말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보는 우리같은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나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그렇죠. 만약 성경에 대단한 사람들 이야기만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못할 것 같은데요.”
“저도 못할 겁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조금 위로가 되는 겁니다.”
“저도 안심이 됩니다.”

“그런데 이 작전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음식은 입맛에 맞추면 되고, 음성은 흉내를 내면 된다고 하지만 장남 에서와 차남 야곱에게는 너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몸의 털이었습니다. 장남은 몸이 붉고 털이 많다는 의미로 이름이 ‘에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차남은 몸에 털이 없고 매끈한 겁니다. 차남 야곱도 축복을 받고 장자권을 받는 것은 좋지만 오히려 들켜서 축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봐 두려운 겁니다. 이것 참 웃기지요? 차남 야곱도 아버지를 속이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라 들켜서 자기가 저주를 받게 될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겁니다.”
“와, 진짜 그러네요. 가족이 똑같네요.”
“비극이죠. 진정 가족을 위하고, 하나됨을 위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네요.”
“진짜 콩가루 집안, 막장 드라마네요.”
“앞으로 더 막장으로 갑니다. 그 때라도 엄마가 ‘안되겠지?’라며 돌이키는 게 아니라 ‘내가 책임질테니 너는 새끼 염소나 잡아와라’라고 독촉합니다. 집안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리브가는 별미를 만들고 차남에게 장남의 옷을 입혔습니다. 옷도 옷이지만 체취를 속이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끼 염소의 가죽을 손과 목에 둘렀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들고 아버지 이삭에게 갔습니다.”
“염소 가죽을요? 성경이라도 이건 말이 안되는데요. 아무리 눈이 멀어도 그렇지 사람 피부와 염소 가죽은 너무 다르잖아요. 너무 어이없는데요.”
“우리의 상식으론 그런데요. 에서는 그냥 우리나라에서 털이 많은 사람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온몸에 털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옛날 해외토픽에 보면 가끔씩 온몸이 털북숭이인 사람이 나오곤 했었는데, 그 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염소도 우리나라 염소를 생각하시면 안되고요. 아마 중동지역의 새끼 염소와 비슷할 정도로 털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더 많았으면 어머 염소 가죽을 덮었겠지요. 차남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갔을 때 오히려 의심을 받은 건 손이 아니라 음성이었습니다. 이삭은 야곱의 손을 만지고는 ‘손은 에서의 손인데,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구나’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삭은 평소 장남 에서가 사냥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고 있었으니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잡아 올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차남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로 빨리 잡을 수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데 하나님까지 동원한 것입니다. 가족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를 속고 속이는 거짓의 종합선물세트입니다. 이삭은 옷깃을 당겨 장남의 체취를 확인하고 장자권을 부여하는 축복의 기도를 합니다.”
“정말 너무하네요.”
“말하는 저도 민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