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테니스를 배우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 각각 20분씩 레슨을 받는다.
그만큼만 해서는 테니스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조언한 사람도 있다.
나는 테니스를 잘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랬다면 칠순이 된 코치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코치님과 살살 랠리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젊은 코치를 일부러 택하지 않았다.
연세 드신 분이라 역시 다르다.
레슨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레슨에만 집중하는 코치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50세가 넘어 인생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을 기능적으로만 만나고 싶지 않아졌다.
내게 허락된 새로운 관계로 생각한다.
칠순이 된 코치님도 내 태도가 다른 수강생과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내게 가끔 개인적인 질문을 한다.
“목사님은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왜 그러세요?”
“그냥 궁금해서요.”
“저는 예수님을 안믿는 사람들을 주로 만나는 목사입니다.”
“그런 목사도 있습니까?”
“저도 예전에는 보통 교회의 목사를 했는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안믿는 사람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을 하시는 거네요.”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배를 피면서 내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우리 마누라가 권삽니다.”
“그러세요? 그럼 부인께서 같이 교회가자고 하셨을 것 같은데요.”
“저는 안갑니다.”
“왜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요.”
“하시고 싶은 일이 뭔가요?”
“담배도 펴야 하고, 술도 마셔야 하고. 교회에 가면 할 수가 없잖아요.”
“ㅎㅎㅎ 그것때문에 부인과 같이 교회에 가시지 않는 건 좀 아쉬운데요. 평소에는 하시다가 일요일에 교회 갈 때만 안하시면 되죠.”
“에이, 그러면 안되죠.”
“술과 담배는 부수적인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요?”
내 입장이 좀 독특했나 보다.
한 번은 평소 코치님과 자주 대화하는 역시 나이 지긋하신 한 분이 내게 물었다.
“목사님이시라면서요?”
“아… 예.”
“목사님은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저는 일반적인 교회와 조금 다릅니다. 비신자와 초신자를 주로 만납니다.”
“예, 코치님한테 좀 들었습니다.”
“저의 모임 장소는 가까운 아파트 단지에 있습니다.”
“기존 교회는 예배당 위주인데 저는 질문을 받고 대화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위주라서 모임 장소도 조금 다릅니다.”
“그러시군요.”
그분들이 내게 말을 걸어올 정도면 그분들끼리는 제법 내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 속으로 들어간 것이 감사하다.
이제 그들의 삶 속으로도 들어가고 싶다.